혁신의 용광로, 새로운 여정을 향하여
포스코의 성장 스토리가 담긴 <혁신의 용광로(2018)>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발간되었다. ‘제철보국 포스코’에서 ‘기업시민 포스코’의 전환의 여정을 함께 바라본 학자로서의 소회와 앞으로 기업시민이 내실화되기 위한 제언에 대하여 <혁신의 용광로>의 저자이자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인 송호근 석좌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스코 직원들 가슴에는 다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남다른 깃발이 펄럭인다.
어려울 때, 기쁠 때, 보람을 느낄 때, 그 깃발은 더욱 빛을 발해 작업장의 동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다.
동료들은 이심전심이다.”
Q. <혁신의 용광로>를 집필한 계기는?
책이 출간된 건 4년이지만, 현장 조사를 시작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다. 포스코의 경영진이 찾아와 포스코에 대한 현장 조사가 필요하고, 지난 50여 년 동안 포스코 내부에서 무슨 조직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타他기업의 공장 관찰기를 출간한 이후 제조산업 현장에 대해 조금 실망한 부분이 있어서, 포스코 경영진과의 요청과 거절이 반복되었는데 ‘포스코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8개월 정도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우려와 달리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부정적인 시선은 긍정적인 이해로, 긍정적인 이해는 급기야 존경심으로 진화했다. 일반적으로 노동현장을 갈등의 터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데, 포스코는 직원들 간에 연대감이나 유대감 등이 느껴졌다. ‘이러한 작업 현장의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이유를 찾아내어 확산시킬 의무감 같은 게 생겼다. 또한 포스코 현장을 조사하면서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포스코에서 찾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상당히 보람이 있었다.
Q. <혁신의 용광로>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는?
책 제목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서 ‘책 제목을 어떻게 할까?’ 며칠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조용한 혁명’으로 할까 고민했었는데 비슷한 제목의 양서가 있었고, 고민 끝에 포스코의 혁신적인 모습이 떠오르면서 <혁신의 용광로>라고 짓게 되었다.
제철업은 고로로부터 시작되니까 ‘혁신의 고로’라는 표현이 더 맞지만, 고로를 혁신한 다음 그로부터 이제 쇳물이 쏟아져 나오니까 그러면 혁신의 용광로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광로는 제철산업, 포항제철의 상징이라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도 제철소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용광로는 과거지향적인 느낌이라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만들기 위해 앞에 ‘혁신’이란 말을 붙였다. 그리고 실제로 포항제철의 산업현장에 가보면 제철이라고 하는 60~70년대 이미지도 있지만, 그 이미지로부터 혁신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혁신의 용광로라는 제목이 걸맞다고 생각했다.
Q. 임직원들을 직접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한 것으로 안다. 인터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마 어떤 다른 사회학자나 인류학자가 현장을 방문하면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의외로 작업장에 있는 현장직하고 사무관리직 사이의 계급적인 구분을보려고 한다. 또한 그 계급적인 구분이 실제로 작업장의 연대감으로 이루어지는가 아닌가, 아니면 이게 어떠한 갈등을 만들어내는가에 관심을 두는데, 이는 작업 현장을연구할 때 흔히 갖는 사회과학자의 선입견 같은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포스코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안 보이고, 오히려 새로운 어떤 힘으로 자꾸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인터뷰 진행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너무 모범적이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현장을 안내한 경영진들이 그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담당 직원이 소개한 인터뷰이를 물리치고 임의로 선정한 부서를 찾아갔는데, 무작위로 찾아간 부서의 팀워크가 훨씬 더 협동적이었고, 작업장의 몰입과 헌신이 돋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는 사회에 대한 헌신, 봉사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보기에 봉사 이상의 활동을 부서원 8명 중 5명이나 하고 있었다. 포스코가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선포하기 이전부터 조직 내부에 임직원들이 기업시민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Q. 혁신의 용광로 책이 나온 후 지난 4년 동안 포스코는 내부의 혁신 동력을 극대화하여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왔다. 4년 전 포스코와 지금의 포스코는 뭐가 달라졌고, 특히 어떠한 변화가 인상 깊은가?
4년 전에도 포스코에서는 내부 혁신 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준비한 것에 대한 결과가 보이는 거 같다. 당시에도 물론 철강 생산이 전체매출액의 절반(그 이상)을 차지하고 철강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 대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포스코는 철강회사이다’라고만 이야기하기 어렵게 되었다. 즉, 신소재나 신사업 쪽으로 4년 전부터 준비를 해서 지금 그 결실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변화량으로 따지면 지난 4년 동안의 변화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미래 문명의 축으로 정체성이 변화하여 이제 제철기업에서 친환경 미래소재 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포스코가 창안한 작업 조직은 단연 돋보인다.
평등조직에서 토론조직, 나아가 혁신조직으로써
한국형 생산성 동맹을 보여준다. “
Q. ‘포스코는 기업시민이다’라는 인식이 지역사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로부터 상당히 긍정적인 반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포스코에서 기업시민이 더 확산되고 내실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업은 시민이 될 수 없으나 시민처럼 행동할 수 있다. 시민처럼 권리를 누리고 또 의무를 다해야 한다. 기업이 시민으로서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기업시민 개념이다. 학계에서는 기업시민에 대하여 대부분 다 동의하고 상당히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전통적인orthodox 학자들은 기업시민은 보통명사이며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본다. 그렇다보니 포스코가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채택하면서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기업시민이 보통명사라 하더라도 기업시민을 고유명사로 전환하여 경영이념의 새로운 좌표로 삼은 곳이 바로 포스코라고 생각한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해오고 있고, 상생의 가치를 잘 안다. 마치 스웨덴의 ‘생산성 동맹’과 같이 포스코는 평등조직에서 토론조직, 나아가 혁신조직으로써 한국형 ‘생산성 동맹’을 보여준다. 상생을 중시하고 국가, 사회, 지역과 함께해온 포스코는 기업시민을 내세울 만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포스코가 미래지향적이고, 이 시대에 해야 할 개념인 기업시민이라는 개념을 경영이념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의 신입사원부터 40대 초반의 직원들에게는 기업시민이라는 개념이 친숙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의 삶 또는 직업에대한 성공을 중시하기 때문에 ‘시민’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포스코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직업군을 망라해서 대부분의 40대 초반 이하의 젊은 층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렇다보니 기업시민이 나와는 무슨 상관인가 생각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시민교육이 활성화되어 있고 시민의 권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시민이라고 하는 개념과 권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 기업시민을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도 해야할 일도 여러가지 있겠지만, 이에 앞서 사회적으로도 시민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Q. 만약 다시 책을 집필하게 된다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싶고, 그 제목은?
다시 집필하게 된다면 크게 두 가지를 담고 싶다. 하나는 이전까지 포스코 직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철맨’이라고 보았다면, 21세기 문명 대변혁의 시대에는 나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찾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건 포스코의 직원들을 말한다.
또 하나는 4년 전에도 이미 포스코에서는 신소재나 2차전지 등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이러한 신사업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업의 생산 비중이나 생산 기술이 달라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을 집필했을 당시에는 포항제철(포스코)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그룹 전체로 보아, 앞으로 한국의 제조업을 무엇으로 이끌어 나갈것인가 질문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제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포스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가 한 해에 약 1천 명씩 퇴직하면서, 빠른 속도로 기성세대가 퇴장하고 거기 맞춰서 젊은 세대가 유입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기존의 어떤 규율이나 규칙을 거기에다 강요할 수는 없다.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새로운 젊은 세대와 함께 융합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는 젊은 세대로 주력 부대가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코의 정체성이 제철로부터 신소재로 전환했음은 물론, 세대도 기성세대로부터 젊은 세대로 전환하고 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문명 대변혁에도 철이 과연 중심이 될까? 물론 유용성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게 과연 중심이 될까에 대해서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철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으로 바뀔까에 대해서 꾸준히 질문해봐야 한다. 즉, ‘21세기 문명 대변혁에 있어서 주요 핵심 제조업은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 포스코가 감당해야 할 질문이다. 그래서 다시 책을 집필하게 된다면 제목을 ‘21세기 문명 대변혁의 핵심 제조업은 무엇인가’를 응집할 수 있는 제목이 될 거 같은데 구체적인 제목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거 같다. 아마 연구하다 보면 책에 어울리는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까?
인터뷰이 : 송호근 인터뷰어 : 손예령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