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활동과 사회적 가치 측정
시장, 기업, 그리고 사회적 가치
전 세계적으로 기업사회와 자본시장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뜨겁다.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란 규범적 관점과 공리적 관점에서 정의할 수 있다. 먼저 규범적 관점에서 가치란 정의, 공정, 관용, 공존, 호혜성 등 인간 삶의 바람직하고 마땅한 기준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치와 현실의 괴리가 사회문제인데, 이를 해결하여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을 사회적 가치라고 한다. 한편 공리적 관점에서 가치란 인간의 욕망, 필요, 효용이며, 주로 시장기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충족된다. 그러나 구조적인 시장실패 요인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 두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만큼 생산이 일어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외부성, 공공재, 공유재, 가치재, 환경재 등과 관련한 가치이다. 이러한 잔여 가치를 경제적 가치와 대비하여 사회적 가치라고 한다. 결국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란 기업활동을 통해 관련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실패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활동의 결과물로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회계적으로 ‘사회성과’라고 한다.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를 ‘재무성과’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사회적 가치 측정이란 기업 활동의 사회성과를 회계적으로 계상하는 것이다.
기업의 활동은 주로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시장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자원배분 기제이다.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은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지만, 최근 진화경제학에서는 시장이 생명세계와 유사하여 시장에서도 변이, 선택, 복제의 진화원리가 작동한다고 본다. 일종의 디자인 알고리즘으로서 시장은 새로운 기술, 재화, 조직이 끊임없이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혁신의 전시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효율성과 혁신성은 시장에서 가격기구가 진화의 ‘선택’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은 ‘보이는 손’인데, 가격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가치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고, 거래 당사자들은 가격이라는 정보에 반응하여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의사결정을 한다. 그 결정의 집합적인 결과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혁신을 촉진하게 된다. 문제는 외부성externality 때문에 이 가격이라는 정보가 불완전하여 실제 발생한 사회적 편익과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는 과소 공급되고, 해로운 가치는 과잉 공급되는 시장실패가 일어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시장기제에 내부화internalize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ESG는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자본시장의 가격기구에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사회적 가치 측정을 통해 기업은 활동의 사회적 편익과 비용에 관한 정보를 자본시장에 제공할 수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제정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ESG 공시기준은 사회적 가치 측정의 대상, 범위, 방법을 안내한다.
2019년 8월, 미국의 200대 기업 CEO 181명이 경제계 연례 행사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 참석하여 기업의 목적을 주주 중심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새롭게 선언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기업의 본질nature of the firm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뀐 것이다. 계약주의적 기업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대리인비용과 거래비용을 극복한 조직적 진화의 결과이다. 기업은 실체entity가 아니라 생산요소를 제공하는 이해관계자 간 ‘명시적, 묵시적 계약의 결합체nexus of contract’이다. 현대 기업은 생산요소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각종 관계특유자산firm-specific asset과 신뢰자산의 소유자까지 일정한 ‘청구권claimant’을 갖는다. 결국 기존의 투자자, 종업원을 넘어서 고객, 협력업체, 지역사회, NGOs, 정부, 국제기구 등까지 기업의 이해관계자 범위가 확장한다. 이제 이해관계자는 기업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핵심자원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각종 위험을 공유하는 주체이다. 때로는 기업에게 파국적 결과를 가져오는 내·외부 위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이해관계자는 기업의 준準소유자quasiowner로서 기업활동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충분히 설명 받을 권리가 있다. 기업은 사회적 가치 측정을 통해 기업활동으로 발생한 이해관계자별 편익과 비용을 구체적으로 보고함으로써 이해관계자가 설명 받기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그 결과 기업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선응적인proactive 대응과 관리가 가능하다.
사회적 가치 측정 대상과 방법
사회적 가치 측정은 기본적으로 그림 1과 같이 논리모형의 개념적 틀을 따른다. 최근에는 임팩트impact의 측정을 강조하지만, 임팩트는 인과관계가 복잡하고 조직과 제도간 상호작용에 따른 장기적, 간접적 효과인 경우가 많다. 실제 측정하기가 어렵고 관련 조직별로 성과를 할당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주로 당사자의 직접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결과outcome를 측정하고, 이를 임팩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결과의 측정이 어려울 경우 산출, 활동, 투입을 대리지표로 측정하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은 지표의 형태에 따라 표 1과 같이 정량적 측정과 정성적 측정으로 구분한다. 정량적 측정은 화폐화 여부에 따라, 정성적 측정은 점수화 여부에 따라 더 세분화할 수 있다. 정량적 측정은 측정의 신뢰성은 높으나 내용적 타당성이 낮을 수 있다. 정성적 측정은 질적 분석이 가능하여 내용적 타당성을 확보하기는 용이하나, 측정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 있다.
시장 부문에서는 그동안 지속가능성보고서 등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기업의 사회, 환경성과를 보고하는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활용해 왔다. GRI, SASB, TCFD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ESG 자본시장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기존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EU의 ESRS6, 국제회계기준재단IFRS의 ISDS7 등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또한 투자자에게 기업의 ESG 성과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지수 index와 가치평가도구analytics가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공시기준, 지수, 가치평가도구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량적, 정성적 측정법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체계와 범주는 개별 도구마다 각각 다르지만 그림 2와 같이 일반화할 수 있다. 먼저 ESG의 원리에 따라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로 구분하고, 다시 기업 활동에서 사회적 가치가 창출되는 위치에 따라 가치사슬인 제품/서비스, 프로세스, 공급사슬, 비가치사슬인 커뮤니티로 구분하여 분류할 수 있다. 환경성과는 크게 자원소비 절감, 환경오염 저감, 기후변화 대응, 생물다양성 보전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가치사슬의 전 영역과 커뮤니티에서 모두 측정 가능하다. 최근 강조하고 있는 Scope 3는 공급사슬에서 환경성과를 측정하자는 것이다.
반면 사회성과는 가치가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성과 유형과 측정방식이 달라진다. 제품/서비스의 사회적 가치는 주로 이용자의 삶의 질이 개선된 효과를 의미한다. 단 일반적인 경제적 후생을 제외한 사회문제와 관련한 성과만을 인정한다. 접근성, 빈곤, 장애인, 고령화, 생명안전, 보건의료 등의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약자의 후생 개선을 사회적 가치로 인식한다. 이 외에 전통적인 소비자 책임 이슈인 품질, 안전, 정보문제도 포함한다.
고용, 노동, 인적자원관리 등과 관련한 사회성과는 주로 기업 내부인 조직과 프로세스에서 발생한다.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등 고용관행의 개선, 조직 내의 젠더/장애/학력/연령/지역/인종 등 각종 차별 해소8, 종업원의 복리후생, 교육, 보건/안전 등의 사회성과를 다룬다.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근로자이므로 종업원 성과의 사회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 공급사슬 성과는 주로 공급망과 유통망의 공정거래, 동반성장, 공급망 사회책임 실사 이슈 등을 다룬다. 커뮤니티 사회성과는 주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관련 성과로 지역사회 기여, 시민사회 및 공공 협력 등과 관련한 이슈를 포함한다. 최근에는 기업의 전문성을 활용해 커뮤니티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생태계의 경쟁우위를 높이는 전략적 사회공헌 관점에서 측정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G 성과는 주주권익보호, 의사결정구조, 회계투명성, 윤리경영 등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성과이다.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은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기업가치 극대화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창출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
최근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활발하다. 무엇보다 현행 ESG 평가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대표적인 글로벌 ESG 평가기관인 MSCI와 톰슨로이터 간 기업 ESG 평가의 상관계수는 2020년 현재 0.38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상관계수 기준인 0.5보다 한참 아래이다. 반면 재무적 기업가치평가의 경우 평가기관 간 상관계수는 0.95 이상이다. 이렇게 평가기관 간 ESG 평가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아직 표준이 없어서 기관마다 평가 체계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긴 하지만, 개별 성과 범주 간 측정 단위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재무적 기업가치평가는 화폐가치라는 단일한 단위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반면, ESG는 이질적인 가치를 서로 다른 단위로 측정하여 평가한다. 만약에 ESG 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측정단위를 통일한다면, 이종 가치 간 비교가 용이하여 일관성 있는 가치평가가 가능해진다.
사회적 가치를 화폐화하여 측정하면 시장의 가격기구에 기업의 ESG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화폐가치가 가격기구의 기본 정보단위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가치는 외부성을 띄는데, 사회적 가치를 화폐화하면 외부성을 시장에 내부화하기가 쉬어진다. 그럴 경우 자본시장은 물론 B2C, B2B, B2G 상품시장에서도 구매자의 구매의사결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와 통합하여 반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 관련 자원배분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서도 재무분석에 준하는 비율 분석이 가능해진다. ROIreturn on investment와 같은 논리로 사회적 가치를 화폐화하여 분자에 두면, 사회적가치 관련 투자 및 운영 의사결정을 경제적 투자 의사결정과 동일하게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에 관한 NPVnet present value, IRRinternal rate of return 등의 분석도 가능하다. 기업이 전략적 사회가치 분야를 선정할 때도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재무분석에 기초하여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에 주목하여 국제적으로는 ‘임팩트 가치평가impact valuation’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이 시도되고 있다. 임팩트를 자연/사회/인적자본으로 구분하고 화폐가치로 측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Capitals Coalition, 화폐화 측정의 기술적 표준을 제시하고자 설립된 Value Balancing AllianceVBA의 시도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SK, 포스코, 삼성전자, 신한은행, 하나은행, KB금융, LH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주요 회계법인도 화폐화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은 5가지 원리를 따른다. 먼저 ‘이해관계자 회계’의 원리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회란 관련 이해관계자의 집합이다. 이해관계자별로 계정을 만들고 편익과 비용을 계상하고 합산하면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 둘째, 보수성의 원칙이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일종의 회계 활동이므로 과다계상 방지가 관건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회적 가치는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최소 수준만을 인식하고, 일반적인 경제적 후생은 제외한다. 셋째, 준거시장 기준의 원칙이다. 사회적 가치의 현실적인 시장가격을 추정한다. 준거시장에 명확한 기준값proxies이 있는 경우만 사회성과로 인정한다. 시장가격을 추정하는 방법은 표 2와 같이 크게 가격기반 추정과 비용기반 추정의 두가지 방식이 있다.
가격기반 추정법이 비용기반 추정법에 우선한다. 공공정책 분야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경제성분석economic analysis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넷째, 추가성additionality의 원칙이다. 경제성분석의 기본 가정으로 기존 활동에 의해 자동으로 창출되었을 사회적 가치는 총 성과에서 차감한다. 차선의 대안, 시장 평균, 법적 요건 등이 ‘베이스라인baseline’으로 차감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할당attribution의 원칙이다. 기업 간 협업이나 공급사슬 거래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경우, 대상 기업의 기여도만큼 사회성과를 할당한다.
아직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은 초기 단계로 여러가지 한계와 과제가 있다. 제도적으로는 규제기관이나 금융기관이 화폐화 측정을 강제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직 화폐화 측정에 대한 개별적인 유인incentives이 부족하다. 향후 지속가능성과 ESG공시기준의 적용 과정에서 사회, 환경 문제가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인 재무적 중 대성financial materiality에 대한 보고가 활발해지면 화폐화 측정이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적으로 보면 가치 추정 방법론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데이터 신뢰성 또한 문제이다. 추정 방법론과 측정 절차를 정교화하고 화폐화 계수 등에 관한 기술적인 표준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 해결이 가장 어려운 것은 사회적가치 간 비교의 등가성 문제다. 다양한 화폐화 추정법을 적용하는데, 서로 다른 방법으로 추정한 사회적 가치를 등가로 비교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동일한 가치도 추정법에 따라 값의 차이가 크다. 방법론 간 적절한 전환계수가 필요하지만,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그 전에는 이종 가치 간 합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목표달성도 등의 개선 관리용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외에도 기술적인 문제는 베이스라인, 기여도 할당, 사회적 할인율, 보고와 검증의 신뢰성 확보 문제 등이 있다.
나가며
사회적 가치 측정은 ESG 자본시장과 지속가능성 회계의 핵심 인프라이다. 기술적인 측정의 표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합의와 공감 위에 공동의 실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부와 경제계가 공동으로 사회적가치평가원(가칭) 설립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평가원은 사회적 가치 측정의 표준을 제정하고, 각종 데이터를 축적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자본시장에서 회계기준원과 신용평가기관의 역할을 떠올리면 된다. ESG 공시제도의 도입과 함께 관련 생태계의 육성도 필수적이다. 측정 전문조직과 전문가 양성, 각종 인증/교육/컨설팅 프로그램의 도입도 필요하다.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 측정은 일종의 ‘사회적 회계’이다. 기업 회계기준이 정립되는 데도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마찬가지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회계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