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공급사슬 관리 방법으로서 성과공유제
지속가능한 공급사슬관리SSCM
최근 기업 세계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지속가능한 공급사슬 관리(sustainable supply chain management-이하 SSCM)에 대한 관심 고조이다. SSCM이란 지속가능경영을공급사슬에까지 확장한 것으로서 ‘기업이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가치의 극대화를 목표로 삼아 자원, 정보, 자본, 그리고 공급사슬 내의 기업 간 협력을 관리하는 것1’을 말한다. 이를테면, 사회가 기대하는 윤리적, 재량적 책임을 충족하는 공급 네트워크 활동을 함으로써, 기업이 경제적 번영, 환경 보호, 사회 정의 실현 등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대기업은 자신만의 활동으로써는 최근에 관심이 집중되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완수하지 못한다. 예컨대, 애플Apple은 협력사인 팍스콘의 근로자 인권 유린으로, 드비어스De Beers는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의 원석 다이이몬드 공급을 이유로, 마텔Mattel은 중국 공급사의 납성분 페인트 사용으로, 나이키Nike는 동남아 공급사의 노동 착취 문제로, 네슬레Nestle는 인도네시아 공급사들의 아동 노동과 야자수 숲 남벌을 이유로, 자라Zara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지 공급사들의 노동착취를 이유로 존립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기업이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지속가능경영을 국내외 공급사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SSCM은 ‘기업은 주주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충족이라는 임무를 진다는 핵심 가정을 전제로 하여 형성된 다양한 관계의 결합체’라는 입장2, 즉 이해관계자 관점에 기반을 둔다. 이해관계자 관점에 의거할 경우,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 경쟁이 과열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기업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이해관계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최근에 강조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두 이해관계자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기업의 운영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일까? 그것은 바로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유무형의 자원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자원을 기업에 제공한다. 이를테면 주주는 자본을, 임직원은 창의력과 노동력을, 고객은 상품 대금을, 공급사는 원재료와 부품을, 정부는 재정과 법적인 지원을, 비정부단체는 비금전적인 지원을, 지역사회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최근에 크게 부각되고 있는 기업 명성이나 사회적 정당성도따지고 보면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에게 부여하는 무형자원이다. 그러므로 유무형의 자원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의존하는 기업으로서는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충족을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으로서 이해관계자 관리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의 명시적, 암묵적 요구 사항들을 들어줌으로써 경쟁력 향상, 매출 증대 등과 같은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시민으로서 기업은 이해관계자 관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점을 도구적 이해관계자 관점이라고 하는데, 도구적 이해관계자 관점에 의하면 기업이 이해관계자 관리를 잘하게 되면 고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고수익성을 지속할 수 있게 되고, 위기에 처한 기업은 신속하게 위기를 탈출할 수 있게 된다.
최근 글로벌 경쟁이 과열되고 있고, 기술과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고객의 충성심, 기업 간의 관계, 지식, 명성 등과 같은 무형자원의 중요성이 점증하고 있으므로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쟁우위 확보의 일환으로서 SSCM을 도입한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가치 있고, 희소하고, 모방이 어려운 자원을 구비해야 하는데 기업의 시장 명성, 조직 성원들의 윤리의식, 협력사와의 신뢰 등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자원들이다. 대기업은 기업 세계에서 약자로 치부되는 공급사(중소기업)와 동반자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공급사는 물론 고객, 투자자, 종업원, 정부 등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2005년 이후 우리 사회에 전반에 걸쳐서 가장 큰 사조로 등장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도 이러한 도구적 이해관계자 관점에 기반을 둔 SSCM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동반성장은 주요 이해관계자인 공급사(또는 유통사)에 대한 대기업들의 독자적 관심 증대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정부 등 외부이해관계자들의 압력이 비중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960년대 이후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대기업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이 대중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와중에 2000년 중반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심해지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해소하라는 압력이 각종 사회단체, 정당, 언론, 학계 등으로부터 비등하였다. 2004년에 등장한 노무현 정부의 ‘상생 협력’, 이명박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참패 이후 내놓은 ‘동반성장’,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경제민주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포용적 성장’ 등은 모두 대·중소기업 양극화 구조를 개선하라는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정부와 입법부가 내놓은 동반성장 지수 산정·공표, 중소기업 적합 업종. 품목 선정,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대한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 부여, 대형마트 출점 제한·의무 휴업, 대형 외식업 신규 출점 제한, 협력이익배분제도 등 대부분의 동반성장 정책은 대기업의 일방적/자선적인 책임을 강요하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동반성장 정책들은 국민 후생이나 산업의 경쟁력 대신 공급자, 즉 중소기업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칫 국민 후생 감소와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소지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Porter & Kramer3는 ‘일방적인 양보’ 혹은 ‘자선’에 기반을 둔 대기업의 동반성장 활동은 해당 기업의 경쟁력 하락은 물론 국민 전체의 생활 수준 하향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대안적 동반성장 방법으로서 ‘공유가치창출CSV’을 제시한 M.Porter가 인정한 바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도입되고 있는 여러 동반성장 활동 중에서 그의 ‘공유가치창출CSV’ 모델에 가장 가까운 활동이 바로 성과공유benefit sharing이다.
공유가치 창출 모델로서 성과공유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정보와 핵심 노하우knowhow를 공유하여 제품 및 공정을 혁신하는 데는 기회주의opportunism라는 문제가 있다. 대·중소기업 간 협력 네트워크에서 공동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양자는 원가, 핵심 노하우 등에 대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러나 정보와 핵심 노하우를 공개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모두 상대방의 기회주의적인 행동 가능성을 염려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의 경우 원가정보를 넘겨줄 경우 대기업이 추가적인 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고, 핵심 노하우를 넘겨줄 경우 자사가 생산하는 부품을 대기업이 직접 생산하거나 경쟁사에 핵심 노하우를 넘겨줄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다. 따라서 대기업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러한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낼 필요가 있고, 나아가 중소기업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혁신 아이디어 제공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 성과공유제이다.
성과공유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혁신을 하고 그 성과를 사전에 정한 방법으로 공정하게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때 공동혁신은 원가절감, 신제품 개발, 품질 개선, 물류 혁신, 공정 단축, 신 고객(시장) 창출 등 협력 네트워크의 거의 모든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다. 성과공유제는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운영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포스코가 2004년에 최초로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성과공유 모형으로는 ① 중소기업이 납품하고 있는 제품의 원가, 품질, 기술, 배송, 탄력성 등에 관한 혁신 방법을 대기업에 제시하고, 그 제안을 대기업이 평가하여 채택된 안을 실행에 옮기는 제안형, ② 대기업이 기술, 원가, 배송, 탄력성 등의 혁신 과제를 미리 제시하고, 중소기업이 이에 응하여 성공할 경우 그 성과를 미리 정한 방법으로 나누는 과제 제시형, ③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금, 기술, 인력, 설비 등의 자원을 투하하여 공동으로 신제품 또는 신공법 개발하는 공동 개발형, ④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 품질, 원가, 이익 등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이상을 달성할 시에 미리 정한 방법으로 목표를 초과한 이익을 나누는 목표 설정형, 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생산 공정, 관리 시스템 등을 개발해 주는 공급사 개발형 등이 있다.
성과 배분 비율은 기여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50:50이며, 납품단가 인상, 현금 지급, 물량 확대, 거래 기간 연장, 공동 특허, 조달 우선권 부여 등의 형태로 중소기업에 대한 성과 배분이 이루어진다. 성과공유와 관련된 목표를 설정할 시에 중소기업은 대체로 낮게 잡으려 하고 대기업은 높게 잡으려 한다. 목표가 너무 낮으면 경쟁 지위를 잃게 되고, 너무 높으면 목표달성이 어렵다. 그러므로 성과공유제를 장기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개방적이고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 1>과 <그림 2>는 포스코 협력 네트워크에서 도입되고 있는 대표적인 성과 공유 모형을 표시한 것이다. <그림 1>은 포스코와 공급사(중소기업)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혁신 활동을 공동으로 펼칠 경우에 발생하는 성과공유 결과를 표시한 것인데 포스코로서는 원가절감을 위한 성과공유 활동 결과 총원가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고, 공급사는 이전에는 받지 못했던 원가 개선 노력을 단위이익 증가 형태로 분배받는 효과가 있다. <그림 2>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 활동의 결과를 표시한 것인데,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포스코는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발생하고 공급사는 납품단가 인상이라는 효과가 발생한다. 두 그림에서 보듯이 성과공유제도는 대기업과 공급사(중소기업)가 함께 이익을 보는, 이른바 공유가치창출CSV 모형이다.
성과공유제는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 관행
기업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무를 지고 있지 않으며 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는데 필요한 능력도 없다. 지속가능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동반성장 등이 아무리 강조된다고 하여도 기업은 장기적인 가치를 갉아 먹으면서까지 이들 활동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행하는 동반 성장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동반성장 활동을 자신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가치증진을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국민 후생을 늘릴 수 있는 영역에 국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기업과 협력사(중소기업)가 공동혁신 활동을 하여 사회에 효용을 제공하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는 성과공유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동반 성장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