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을 둘러싼 경제·사회적 차원의 쟁점
들어가며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이하 IPBES)가 발표한 스토리 중 일부를 살펴 보자. 전세계 건강한 자연생태계의 면적이 한 세기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18세기 이래 전세계 습지의 83퍼센트가 사라졌다, 야생동물의 체질량이 82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전세계 폐수와 오수의 80퍼센트 이상이 처리되지 않은 채 강, 호수, 바다로 버려진다.
1980년대 이래 플라스틱 쓰레기가 10배 이상 늘었다. 지난 반 세기 사이에 모든 조류,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의 개체수가 70퍼센트나 감소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삶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태계 훼손과 생물다양성 상실은 인간 집단의 바탕—생존, 경제활동, 사회공동체 유지—을 무너뜨린다.
단순한 예를 들어 보자. 한국에서 참치 통조림에 가장 많이 쓰이는 어종은 가다랑어다. 어릴 때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피낭동물을 먹고 자라다 성장해서는 작은 물고기, 오징어, 갑각류 등을 사냥하며 산다. 만일 해양오염, 산성화, 기후위기로 가다랑어의 먹잇감이 사라지면 가다랑어가 서서히 사라지고, 참치 통조림 가격이 자꾸 오르다 결국 참치 통조림은 사양산업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경향이 심해지면 종국에는 참치 통조림의 생산, 유통, 소비와 관련된 경제활동이 소멸될 것이고 그와 관련된 일자리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FIS식품산업통계 정보의 가공식품 생산액 추산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참치 통조림을 포함하여 어묵, 어육, 조미 어류 및 통조림 등의 생산액이 매년 2조2천억원 규모였다. 이런 시장이 가까운 장래에 대폭 줄거나 아예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라. 이 예는 아주 작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태계는 자연의 변화에 맞춰 적응해 가는 복잡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화산이 폭발하면 생태계는 그 조건에 맞춰 변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주로 인간의 개입에 따른 생태계 훼손을 다룰 것이다. 목재용으로 대규모 벌목을 하고 농경지를 확대하기 위해 숲을 파괴한다, 도시를 건설하고 도로를 닦고 지표면을 변형시킨다, 자연자원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환경 파괴가 초래된다, 저인망으로 어류를 남획하고 심해유전을 뚫는다, 각종 산업형 오염이 발생한다, 세계화로 인간과 자연물의 이동이 늘면서 외래종이 침입하여 토착종을 없애고 우세종이 된다. 이런 변화들은 거의 모두 인간의 경제활동에 따른 결과다.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가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이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점을 흔히 간과하곤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온전하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진다고 지적한다.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새천년 생태계 평가MEA’, ‘생태계 및 생물다양성 경제학TEEB’, ‘생태계서비스 가치 데이터베이스 ESVD’ 등이 있다.
생태계서비스의 가치로서 우선 ‘직접적 사용가치’를 들 수 있다. 어류와 해초 등 식량 자원, 원목, 연료용 화목, 물, 모래와 진주와 규조토와 같은 자연생성물, 약초와 제약용 생물질, 유전자 등은 직접적으로 사용가치가 있다. 생태계서비스의 ‘간접적 사용가치’도 크다. 대기권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기후를 조절한다. 해안선은 연안 침식을 막아준다. 방풍림과 습지는 태풍과 홍수 피해를 줄인다. 강과 바다는 공해물질과 수질을 정화시켜 준다. 자연경관과 생태계는 관광, 여흥, 레크리에이션의 기능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미래세대에까지 적용하면 잠재적으로 ‘증여 가치’가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비활용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연환경을 통해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성적으로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경제적으로 따질 수 없는 차원의 비물질적 가치가 존재한다. 우리가 콘크리트 도심을 떠나 녹색의 숲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움,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마주하는 호쾌한 감정을 상상해 보라. 이런 것이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음악, 미술, 영화, 문학 등 예술 활동의 원천이 고갈될 수도있다.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는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위해서도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은 중요하다. 빈곤과 기아, 건강-보건-웰빙, 교육, 젠더평등, 깨끗한 물과 위생, 저렴한 에너지, 산업과 혁신 등은 생태계서비스의 원할한 기능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생태계서비스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평가하지 않는가? 정치와 경제의 의사결정자들이 이 문제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실패의 측면도 있다. 생태계서비스는 흔히 시장에서 가격이 책정되지 않는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해서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비배제성, 비경합성) 비슷하게 취급되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거나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설령 생태계서비스에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정부보조금과 같은 비경쟁적 시장 방식이 개입되곤 했으므로 가격 환산에 왜곡이 생기기 쉬웠다.
자연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자연의 가치를 실제로 평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우선 생태계서비스의 구체적인 가격을 일일이 매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생태계서비스에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지닌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시장적 가치로 쉽게 환산될 수 있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인지, 비시장적 가치도 대폭 반영할 것인지, 만일 비시장적 가치를 포함시킨다 해도 어떻게 재무적 가치를 매길 것인지 등등 논쟁거리가 많다.
IPBES가 2022년에 내놓은 발표에 따르면 2010~2020년 사이에 이루어진 자연의 가치평가 연구 중 인간에게 자연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따지는 자연의 ‘도구적 가치’에 관한 연구가 거의 3/4에 달했다. 자연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따지는 연구는 20퍼센트, 인간과 자연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론적 가치’에 대한 연구는 6퍼센트에 불과했다. 자연의 가치를 평가하는 움직임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자연의 도구적 가치를 따지는 것만 해도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래 자연의 가치에 대한 관점은 도구적, 본질적, 관계론적 가치를 모두 포괄하는 식으로 확장되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고 가정하자. 우선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잡을 필요가 있다. 즉, 프로젝트에다 처음부터 생태계 보전의 관점을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길게 보아 경제적 혜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자연의 ‘도구적 가치’). 또한 그 프로젝트 지역에서 생물종이 사라지면 그 자체로서 자연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랬을 때 인간에게도 결국 피해가 올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개발 과정에서 자연경관과 자연유산을 훼손시키면 지역민들이 자연과 맺고 있던 ‘관계론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요컨대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 재무적 관점으로만 개발의 사업성과 수익성을 따지던 관행을 완전히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연의 가치에 관한 IPBES의 유형화를 살펴보자.
첫째, ‘자연으로부터의 삶Living from nature’이 있다. 자연이 제공해 주는 자원과 물질 덕분에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자연과 함께 사는 삶Living with nature’이 있다. 인간의 욕구와 무관하게 자연이 그 자체로서 번성할 수 있는 내재적 권리를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셋째, ‘자연 속에서의 삶Living in nature’이 있다. 인간은 자연의 테두리 내에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자연으로서의 삶Living as nature’이 있다. 인간의 심신 그리고 영적 차원에 자연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사회다양성과 생물다양성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자연환경을 야생 그대로의 상태로 보전하기만 하면 되는가? 다시 말해 자연환경을 인간사회로부터 분리하여 청정지역으로 남겨두기만 하면 되는가? 그런데 실제로 생물다양성 밀도가 높은 적도 부근의 핫스팟 지역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에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토착민(원주민)과 지역공동체들이 많다. 최대 5억명까지 이 범주에 속한다고 추정된다. 이들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의존해 살아가며, 동시에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한다. 자연을 내버려 두거나 무조건 분리시켜 보호하기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토착민들의 삶의 터전을 인정할 때 자연환경이 더 잘 보전된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실제로 생물다양성협약의 초안에서도 이 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세계의 토착민들이 87개국에서 약 3천8백만 평방킬로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전세계 육상 보호지역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토착민들이 거주하는 영토에서 산림벌채의 비율이 낮다는 조사도 있다. 토착민들에게 토지사용권과 접근권을 부여하고, 어획과 산림 활용을 허용할 때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더 잘 보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법적 개발활동을 막을 수 있으며,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된 토착민들의 전통 지식체계와 관행이 자연환경을 잘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되기 때문이다. 토착민들의 전통적 지식체계는 자연을 수익과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연에 되돌려주며, 낭비 없이 자연을 활용하도록 한다. 즉, 자연자원이 스스로 재생되는 규모와 속도 내에서 자원을 이용하므로 자연환경의 ‘항상성’이 유지되며 지속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다.
이런 것을 ‘토착민의 청지기정신indigenous stewardship’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전통적 지식, 생계의 관행, 문화와 영성이 모두 포함된다. 토착민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여성들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서비스 보전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여태까지 생물다양성 이슈를 다루는 국제·국내 정책에서는 주로 생태적, 경제적, 거버넌스 문제를 다루어 왔다.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서비스의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학문적, 실천적 추세가 바뀌고 있다. 인간계의 사회다양성과 자연계의 생물다양성이 총체적으로 ‘사회생물다양성sociobiodiversity’을 이룬다는 새로운 통찰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팜유를 채취하기 위해 자연산림을 개간하여 단일작물만을 재배하면 생물다양성이 파괴되면서 그와 동시에 그 지역공동체의 사회다양성이 파괴되기 쉽다. 모든 개발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를 늘 인식하고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기업의 역할
최근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생물다양성 문제는 여전히 생소한 주제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는 ‘쌍둥이 이슈’라고 불린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부터 두 분야를 함께 다루었다. 그렇지만 여러 이유로 생물다양성 위기는 기후위기만큼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제도의 틀이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이라면, 생물다양성 위기를 다루는 틀은 유엔 ‘생물다양성협약CBD’이다. 두 협약과 관련하여 영국 정부에서 발간한 두 편의 공식 연구보고서가 중요한 이론적 방향을 제시했다. 2006년 런던정경대학LSE의 니콜라스 스턴이 발표한 <기후변화의 경제학>, 그리고 2021년 케임브리지대학의 파타 다스굽타가 발표한 <생물다양성의 경제학>이 그것이다.
기후변화협약은 2015년의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큰 진전을 보았고 2022년 말에 카이로 당사국총회COP27가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생물다양성 쪽은 아직 실효성 있는 협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중국 쿤밍에서 비대면으로 회의를 이어가다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레올에서 열리는 당사국총회COP15에서 최종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생물다양성 보전에 관해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이 아직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세계 여론은 몬트레올 총회를 통해 드디어 이 분야에서도 ‘파리기후협정과 같은 극적인 순간Paris moment’이 마련될지 주목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각국 정부, 산업계, 기업활동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
생물다양성협약을 제정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려면 기업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것을 위해 2006년 브라질 COP8에서부터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환영하고 독려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일본 나고야의 COP10에서 제안된 ‘생물다양성 보전 전략계획’에서 기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제안이 나왔다.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기업 운영에 있어 생물다양성 문제를 ‘주류화’하여 기업의 행동을 바꾸자, 기업의 투자·경영·조달 정책과 생물다양성·생태계서비스 보전을 결합하자, 비즈니스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글로벌동반자 관계를 맺기 위한 플랫폼을 마련하자, 기업의 연례보고서에 생물다양성 보전 성과를 싣자,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국가별·국제적 전략과 행동계획을 수립할 때 기업이 참여하자 등이다.
생물다양성협약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자연을 위한 비즈니스 동맹Business for Nature’은 다음과 같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각국 정부는 기업이 자연보전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장려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자연보전과 관련된 재무상황을 공개하고, 자연과 관련된 리스크를 관리한다. 둘째, 현재 1조8천억달러 규모인, 자연친화적이지 않은 각국 정부의 보조금을 2030년까지 폐지하거나 재조정한다. 셋째,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 상실의 흐름을 중단시키거나 역전시킨다는 미션을 천명한다.
나오면서
지금까지 간략하게 생물다양성을 둘러 싼 경제·사회적 쟁점 그리고 그것을 국제적인 제도로 명문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알아 보았다. 지속가능한 지구행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화급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슈는 기후변화 대처와 생물다양성 보전이다. 생물다양성은 기후변화만큼이나—또는 그보다 더욱—심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인과관계를 설명하기가 복잡하고, 딱 부러지게 수치로 목표를 정할 수 있는 명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침묵의 위기’라 불리는 생물다양성 문제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자연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의사결정에 있어 자연의 가치평가를 반드시 포함시키며, 자연의 가치를 내면화하기 위해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고, 전사회의 규범을 지속가능성 및 전 지구적 정의에 맞춰 정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문제에 신속하게 대처를 하지 못해 국제적으로 곤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생물다양성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할 순간이 왔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