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철학과 기업시민 경영
[서언]
세계 자본축적에서 앞선 서구 투자자의 관점에서 개도국의 부실한 기업지배구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금 확보 및 고혁신 경제로의 진보를 가로막는 문제다. 개도국에서 출발한 한국은 다행히도 고도성장을 이루며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마찬가지로 지배구조 개선의 결함 때문에 여전히 기업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 서구 학자 및 실무가들의 판단이다.
기업지배구조 관점에서 보면, 포스코 그룹은 5년 전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 이념을 선포하고 이와 같은 가치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포스코의 기업시민경영은 이제 국내 및 해외의 대표적 모범관행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서구에서 조어된 기업시민 개념이 경제학의 시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18세기 철학과도 맞닿아 있음을 소개한다.
[기업시민의 개념 및 역사]
기업시민 개념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관련해서 등장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근자에 학술적 공론화를 거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Waddock 2008). 아래 구체화되듯이 이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기업의 자유재량 행위를 훌쩍 넘어서는 개념이다 (Post 2002). 또한 현재 기업관행의 당위적 부분으로 여겨지기는 해도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과장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21세기 들어 개인과 기관 투자자 모두가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이슈처럼 사회적 책임에 관한 지향성을 존중하는 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업시민에 관한 중요성이 커졌다. 게다가 와튼스쿨의 금융재무학 교수인 에드먼스(Alex Edmans, 2011)에 의해 미국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이 1984~2009년에 걸쳐 주식수익률에서 동종기업을 2.1~3.5% 능가했으며, 분석가들의 예상을 체계적으로 뛰어넘는 수익을 냈다는 논문도 기업시민에 한몫했다.
기업시민은 기업이 자선활동이나 자원봉사 같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시민은 공동체적 정체성 하에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서 핵심적인 사회적 가치(foundation value)와 윤리적, 법적, 경제적 책임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가를 고려한다 (그림1 참조). 따라서 기업시민 의식은 문명시민으로서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 목표는 이해관계자를 위해 여전히 이윤과 수익성을 존중하되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한층 수준 높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스미스의 도덕철학과 경제학: 기업시민 개념의 사상적 기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20세기 후반 세계 경제학계에서 시장지상주의자를 자처했다. 따라서 그의 1985년 뉴욕타임스 칼럼에 따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로지 이윤극대화에 있다. “주주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 이외의 일에 대해 기업 관계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우리 자유사회의 근간을 완전히 훼손할 수 있는 경향은 드물 것이다.”
또한 프리드먼은 기업의 이윤극대화 관점에 대한 변호를 “보이지 않는 손”이 거론되는 《국부론》의 통찰에서 구했다. “사전에 의도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의 결과로서 경제적 질서가 확보될 수 있다” (Friedman 1980). 20세기 후반 사회경제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스미스의 복합다층적 사상을 일차원적으로 그리고 그릇되게 차용하는 프리드먼과 같은 경제학자들은 오로지 이기심과 경쟁이 수반하는 사회적 이익을 강조하면서 주주자본주의를 격찬했다.
하지만 고전읽기에 무심한 프리드먼 및 이에 편승했던 추종자들은 스미스의 학문세계가 도덕철학, 즉 융합적인 사회과학에 속한다는 점을 이해하는데 주저했다. 영국 경험론 철학의 거두인 흄과 스미스에 따르면, 경제활동의 주요 동기가 되는 인류의 이기심(self-interest)은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다.
《국부론》에서 인류의 핵심 운동원리로 강조했던 생활개선본능(self-betterment), 또 이와 별개의 명예심의 추구는 이기심의 긍정적 구성요소다. 이와 대조적으로 무사안일의 동기나 탐욕, 또는 지배욕이나 허영심은 이기심의 부정적인 요소를 구성한다. 이 후자의 동기들은 기회주의나 무임승차행위로 쉽게 귀결되며, 과시적 경제행위와 사회갈등을 빈번히 낳는다. 근대 초기 토마스 홉스가 말했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 오로지 이기심을 자유방임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해 최대의 사회적 이익이 보장된다는 우화는 인류의 상식에 반하는 명제다. 이것의 허구성은 이제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익숙한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과 내쉬 균형이 적절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런 우화는 현대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공생의 과학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어떤 공통 목적을 위해 공생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동물”로 규정했다. 한편 스미스에 의하면, 인간이 소멸하지 않고 생존과 진화를 거듭한 것은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덕감정론》의 서두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해도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 본성도 있다”고 말한다. 이 동감(sympathy)은 인류의 강력한 이기심 내지는 대체로 미약한 이타성과도 구분되는 사회적 본능이다. 이것은 공정한 관찰자의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공감하면서 그런 행위를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자연적 본능이 인류 역사의 다양한 국면에서 자생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형성시킨다. 예를 들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같은 제도화된 공유 사회규범이 출현하거나 전승되는 기제의 원천이 된다. 뿐만 아니라, 가장 강력한 이기심의 본성을 부분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역시 공유된 사회적 가치 체계 속에서 최적으로 기능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도덕과학적 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더욱이 《도덕감정론》에서는 역사적으로 공동선의 획일적 추구가 종종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그리고 동감 원리에 기반한 정의감에 의거해서 민법과 형법 같은 국가적 규제(예: 현대 시기에는 상법과 증권거래법 등에 의한 기업지배구조 규제)가 출현했음을 설명한다. 즉 사회적 공감의 원리 때문에 공동체의 정치적 의무에서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핵심 원리인 정의의 지배가 성립했다. 특히 정의는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주요 기둥으로서, 만일 이것이 제거되면 인간사회라는 거대한 구조물은 한순간에 산산이 분해될 것이다” (Smith 1759). 스미스의 도덕철학 강좌 수강학생들의 강의노트 필사본인 《법학강의》는 이처럼 정의감에 기반한 법제도의 성립과 진화에 관한 설명을 잘 보여준다.
결국 이기심의 원리에 근거한 《국부론》은 별개의 저술이 아니라, 복합다면적 사회공동체 및 국가 운영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과 상호 협업하는 논리를 추구한다 (표1 참조). 이 불후의 책에 의하면,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을 확립하는 것이 모든 계층의 최고도의 번영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증하는 매우 단순한 비밀이다.”
사실 《국부론》의 핵심 사상에 해당하는 이 구절의 의미는 경제활동은 사회적 삶속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그 배경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 그리고 도덕, 문화, 관습, 법률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시장과 경제활동은 사회공동체와 국가라는 원리적으로 서로 차별화된 인문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흥망성쇠를 겪는다 (North 2005; Kim 2014).
[스미스의 ‘기업시민’ 철학과 경영적 시사점]
18세기 스미스의 도덕철학이 기업시민 개념의 선구자라면, 그것은 어떠한 경영적 시사점을 갖는가? 그는 이기심의 추구가 개개인의 생존을 위해 가장 강력한 동기임을 분명히 했다. 과거의 해석과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는 이러한 협소한 관점에만 의존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이익 추구에만 몰입하는 행태는, 현대경제학적 용어로 말한다면, 거대한 외부효과를 낳아 끊임없는 시장실패로 이어진다. 환경파괴와 기후위기가 그 대표적 거시 사례다.
스미스에 따르면, 역사적인 사회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은 공정한 관찰자의 시각에 의거해 타인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성향에 의존하며, 마찬가지로 국가 규제의 토대가 되는 정의의 원리 역시 동감의 본성에서 파생했다. 이러한 복합다층적 이론체계는 현대경제이론은 물론, 예컨대 사회학의 대가 막스 베버의 종교경제학,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라스 노스의 신경제사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모델 가운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상하면서 이를 스미스와 관련짓는 담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기업조직은 사회공동체에 소속되어 규제를 받는 실체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특성상 자기중심적 성향과는 구분되는 사회학적, 정치적‧법적 요인이 내포되어 움직인다. 즉 조직의 운영에서 자기이익추구 동기에 의존하는 경제적 교환관계가 중시되지만, 동시에 공정한 교환관계의 원칙으로서 공감, 상호호혜와 신뢰, 명성의 규범뿐만 아니라 권력유인이 조직의 특성을 규정하고 그 지속가능성을 창출해낸다. 특히 이때 신뢰와 명성은 주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거래비용을 감축하며 동태적인 조직운영과 경제성장의 동인이 된다 (김광수 2016). 이러한 점에서 기업시민 경영에 애덤 스미스의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김광수 (2016). “애덤 스미스의 조직이론과 조직의 경제학”, 국제경제연구, 제22권(2), 1-34, 한국국제경제학회.
김광수 (2019). 국부론과 애덤 스미스의 융합학문, 도서출판 해남.
Edmans, A. (2011). “Does the Stock Market Fully Value Intangibles? Employee Satisfaction and Equity Prices,”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vol.101(3): 621-640.
Friedman, M. (1980). Free to Choose: A Personal Statement.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Kim, K. (2014). “Adam Smith’s and Douglass North’s Multidisciplinary Approach to Economic Development,” 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vol.73: 3-31.
Kim, K. (2022). “Resolving a Seeming Paradox in Adam Smith’s Study of History,” The European Journal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vol.29(1): 40-60.
North, D. (2005). Understanding the Process of Economics Chang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Post, J.E (2002), “Global Corporate Citizenship: Principles to Live and Work By,” Business Ethics Quarterly, vol.12(2):143-153.
Smith, A. (1759).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edited by D.D. Raphael and A. Macfie, Oxford: Clarendon Press. (김광수 옮김, 《도덕감정론》, 한길사)
Smith, A. (1776).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edited by R.H. Campbell and A.S. Skinner, Oxford: Clarendon Press.
Waddock, S. (2004). “Creating Corporate Accountability: Foundational Principles to Make Corporate Citizenship Real”, Journal of Business Ethics, vol.50(4): 313-327.
Waddock, S. (2008). “The Development of Corporate Responsibility/Corporate Citizenship,” Organization Management Journal, vol.5: 29-39.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