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반드시 가야 할 길 : 도전과 기회
[탄소중립 : 생존을 위한 시대적 화두이자 국제 사회 규범]
21세기는 바야흐로 기후위기시대다.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기상 이변에 따른 다양한 피해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단지 가난한 국가들에서만이 아니다. 올해 여름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을 강타한 집중 호우와 홍수로 18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몇 년동안 캘리포니아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대형 산불이 발생해서 고속도로가 폐쇄되고 전기공급이 끊겼으며 주택 등에 피해가 발생하고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연이어 일어난 것이다. 중국 허난성에서 발생한 폭우로 사망·실종자가 278명에 7,373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지난 1~10월 폭우로 가옥 20만 3000채가 무너졌고 직접적인 경제 손실만 2406억 위안(약 44조 37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서유럽이나 중국의 지난 여름 폭우는 천 년 빈도의 폭우로 알려졌다. 이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진행 중인 오늘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개발도상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누구도 기후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기에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나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광범위한 공감대와 합의가 이루어진 하나의 국제규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30년이 다되어가는 1992년에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예상하고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UNCED)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을 채택하였다. 기후변화 문제는 국제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이기에 모든 국가의 참여에 대한 합의를 마련했음에도 UNFCCC는 느슨한 수준의 합의로 이후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 배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1997년에 채택되고 2005년에 발효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는 부속서 I 국가들로 불리는 선진국들에게만 의무 감축 목표를 부여했고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개도국의 참여 없이 세계 배출을 감소시키기는커녕 늦추는 것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2015년 국제사회는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Parties, COP)에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채택하였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 훨씬 아래로well below, 더 나아가 1.5℃를 넘지 않게 노력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선진국들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들도 포함해서 모든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설정해서 온도 목표를 달성해가기로 했다. 이후 2018년 10월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발표하여 온도 상승 억제 목표를 1.5℃로 권고하였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세계 탄소 순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 중립Net-zero 을 달성해야 하는데, 특히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을 45% 줄이도록 요청하였다. 이후 2019년 9월에 국제연합UN이 개최한 기후행동 정상회의Climate Action Summit 이후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져 2021년 10월 현재 140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이제 탄소 중립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화두이자 누구나 지켜야 할 국제사회 규범이 되었다.
[2050 탄소 중립 선언과 국제사회의 2030 NDC 상향 흐름]
스웨덴과 독일(2045년), 아이슬란드와 오스트리아(2040년), 핀란드(2035), 우루과이(2030) 등 2050년보다 더 빠른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들도 있고 중국(2060년), 인도(2070년) 등 더 늦은 목표연도를 선언한 국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2050년을 탄소 중립 목표연도로 선언하였다. 이러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예전에 제출했던 2030년 국가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로는 달성이 어렵기에 다수의 국가들이 2030년 NDC 목표 상향에 나섰다. 지난 4월 22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개최한 기후정상회에서 주요국들은 2030 NDC 상향 목표를 발표하였다. 미국은 기존 2025년까지 26~28% 감축을 50~52% 감축으로, 일본은 26% 감축에서 46% 감축으로 높였다. 영국은 2030년까지 68% 감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35년까지 78% 감축을 약속했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상향된 2030 NDC를 연내 발표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후 5월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 공동 선언문을 통해 COP-26에서 상향된 2030 NDC를 발표하기로 하였다.
UNFCCC는 9월 17일에 지난 7월 30일까지 제출된 164개국 2030 NDC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에 따르면 84개국이 새로 또는 강화된 NDC를 제시했지만 2030년 배출량은 IPCC의 권고치인 2010년 대비 45% 감축에 전혀 미치지 않은, 16.3% 증가로 예상되었다. 현재 2030 NDC대로라면 1.5℃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량을 제한해야 하는 탄소 예산의 89%(약 445억 톤)를 2030년 이전에 소진할 전망이다. 지난 10월 31일에서 11월 13일 사이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 이전까지 제출된 감축목표를 모두 달성한다해도 2050년까지 2.7℃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어 보다 많은 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2050 탄소중립 선언과 2030 NDC 상향 목표 발표]
우리나라는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가진 2021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통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12월 7일 정부 부처 합동으로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21년 5월 29일 탄소중립 추진을 위한 추진체계로 민관합동 거버넌스 기구인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가 출범하였다. 당시까지 관련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아 “2050 탄소중립위원회 설치 및 운영규정”이라는 대통령령에 설치 근거를 두었다. 탄중위는 탄소중립정책의 관제탑control tower이자 참여와 소통 중심의 사회적 대화의 소통창구이다. 지난 8월 31일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는데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 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되었다. 탄소 중립의 법적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심의의결기구로 100인 이내 위원으로 구성된다. 현재 탄중위 위원은 당연직 위원인 18명의 장관과 77명의 민간위원, 국무총리와 민간1인의 공동위원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탄중위 내에는 8개의 분과위원회와 총괄기획위원회가 있으며 전문적 검토한 필요한 쟁점이나 주제가 있을 경우 탄중위 위원과 외부 전문가들로 전문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탄중위는 출범 후 10월까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수립과 2030 NDC 상향안에 대한 심의 의결을 가장 핵심적인 작업으로 진행하였다. 보다 전문적인 검토를 위해 전문위원회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반과 NDC 작업반을 구성해서 정부가 마련한 각각의 안에 대해 수정 의견을 제시하고 분과회의와 총괄회의를 진행하면서 정부와 꾸준한 협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였다.
우선 8월 초에는 세 가지 안으로 구성된 2050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였고 이후 이해당사자 단체와 기관들을 대상으로 구성한 협의체와의 간담회와 일반시민 대표로 구성된 탄소중립 시민회의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애초 정부가 제시한 2030 NDC 초안을 수정한 수정안에 대해서도 협의체 간담회와 온라인 대중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모든 관심 있는 단체와 기관, 일반 시민들까지도 탄중위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러한 입장문에 담긴 다양한 제안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최종안을 구성하였다. 지난 10월 18일 탄소중립위원회는 전체회의을 열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NDC를 심의·의결하였고 정부는 11월 27일 국무회의를 열어 탄중위 심의 원안을 최종 국가 목표로 확정하였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란 서로 다른 전제와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탄소 중립의 미래 사회상을 그려본 것이다. 시나리오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후위기의 심화, 기후인식의 변화, 국제 여론 흐름과 국제 시장 변화 등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에도 5년에 한 번씩 재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2021년에 수립된 2050 탄소중립 최종 시나리오는 두 가지 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론 수렴 결과 석탄발전은 적어도 2050년 이전에는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어서 석탄화력발전을 포함하고 있었던 초안의 제1안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남은 두 초안을 보다 강화해서 국내에서 순 배출량이 0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초안의 경우 3안만 국내 순배출량이 0으로 1, 2안의 경우 국내 잔여 배출량인 25.4백만 톤과 18.7백만 톤은 국제협력을 통해 상쇄함탄소중립으로써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방식이었다.
최종 시나리오인 A안과 B안은 크게 전환부문과 수송부문에서 차이를 보인다. B안에서는 유연성 전원으로 LNG 이용이 5.0% 가량 남아 있으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A안과 B안에서 각각 70.8%와 60.9%를 차지한다. 수송부문에서는 전기·수소차 비중이 각각 97%와 85%로 B안에서는 탄소중립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가 포함되어 있다. 수소의 경우 A안은 그린수소만 이용하는 것으로 가정한 데 비해 B안은 일부 추출수소와 부생수소를 포함하고 있다. 탄소 중립은 단순히 흡수와 배출을 동일하게 만듦으로써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그래도 발생하는 배출은 우선 자연기반 흡수원을 통해 최대한 흡수하고 그럼에도 남는 잔여량은 탄소포집이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CCUS)를 통해 흡수 제거함으로써 순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최종 시나리오 A, B안의 경우 시나리오 초안의 2안과 3안에 비해 CCUS 처리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과학적 불확실성과 경제성을 고려할 때 되도록 배출을 줄이고 자연기반 흡수를 늘리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2030년 NDC의 경우,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상향 전 현재의 2030년 NDC는 2018년 대비 26.6% 감축하는 것이었으나 40%로 대폭 상향되었다. 이는 탄소중립기본법에서 35% 이상 감축하도록 한 규정과 함께, 선진국이자 현재나 역사적인 배출량이 많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당사국으로서의 책임성과 이행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결정이었다. 국내 감축에 주력해서 35.4% 이상 국내에서 감축하되 국제협력을 통해 나머지를 줄일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국제협력의 경우에도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협력 당사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기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표 2>에 제시된 것처럼 주요국들의 2030 NDC 상향 목표는 기준년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기준년도 대비 40%를 넘었으며 배출 정점년도로부터도 40%를 넘었다. 국가마다 배출 정점이 다르기에 우리나라의 기존년도인 2018년 배출량과 2030 NDC 수준을 비교해보면, 대개 30%대 후반이거나 40% 이상이다. 시민사회에서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는 IPCC 제안(2010년 대비 평균 45% 이상 감축)을 만족시킨 국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온실기체 누적배출량으로 세계 11위 국가이자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세계 7위 국가이지만 다른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산업화가 뒤늦게 진행되었고 UNFCCC 상 부속서 I 국가가 아니어서 1990년부터 감축해야 하는 의무를 지지 않았던 탓에 1990년 이후 배출량이 149%에 달할 정도로 급증한 상태다.
2018년이 배출 정점으로 탄소중립 목표연도인 2050년까지 남은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짧은 데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40%라는 NDC 목표는 상당히 도전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을 향한 변화를 연기하거나 지연시킬 경우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로 인해서만이 아니라 탄소중립을 향한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로 인해 우리에게 닥칠 고통이 더욱 커질 수 있기에 보다 빠른 대응이 필수적이다. 국가 전체 감축목표는 2018년 대비 40%이지만 부문별 감축목표는 같지 않다. 폐기물 부문과 전환부문은 각각 46.8%와 44.4%로 평균 이상의 감축이 필요한 반면 산업부문은 14.5%로 가장 낮다. 산업부문의 경우 연료만이 아니라 원료를 전환해야하고 공정의 변화가 필요한데, 기술개발이나 시설 교체에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투입되어야 할 뿐 아니라 고용과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허용한 것이다. 산업부문은 기술과 설비, 연·원료 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점진적 감축이 아니라 계단식 감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국내 목표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사회가 모두 추구하는 목표인만큼 전환에 뒤쳐질 경우 해당 기업이나 산업이 맞이하게 될 피해와 고통은 상당할 것이다.
[글래스고 기후 합의가 남긴 것과 탄소중립의 도전과 기회]
2050 탄소 중립은 이제 담론이나 선언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반드시 달성해야 할 실질적인 목표가 되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글래스고 기후 합의Glasgow Climate Pact를 채택하였다. 여러 가지 한계나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의미 있다고 평가 받는 부분은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안정화한다는 지구적 목표를 확인하였고 단계적 퇴출phase out이 아니라 단계적 감축phase down으로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탄소저감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석탄unabated coal 발전”과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inefficient fossil fuel subsidies”을 단계적으로 줄여간다는 데 대해 국제 합의가 이루어져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40%가 석탄에서 비롯되기에 앞으로도 석탄 소비 감축은 주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COP-26이 열리기 전 국제사회의 2030 감축 목표가 모두 달성된다 하더라도 지구 가열화는 2.7℃까지 상승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COP-26에서 새로운 목표가 더해지면서 기온 상승이 2.4℃로 낮춰질 것으로 보이나 이 수준 또한 여전히 재난에 가깝다. 인도가 2070년 탄소중립을 약속했기에 21세기 말 온도 상승은 1.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나 이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들에겐 가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1.5℃에 맞출 수 있는 NDC를 내년에 다시 제출하기로 합의하였기에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의에 참석해서 2018년 대비 2030년 NDC를 기존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상향, 2050년까지 석탄발전 폐지, 남북한 산림협력으로 한반도 온실가스 감축, 2030년까지 30% 메탄 감축 등을 발표했다. 한국의 2030 NDC는 IPCC가 요구하는 지구 평균 감축 목표에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내 환경단체들의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COP-26 연설에서 과감한 기후대응에 나선 국가 사례에 한국을 넣기도 하는 등 국제사회는 한국 행보를 환영하며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기후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기후위험은 크게 두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극단적인 이상기후에 따른 생명이나 재산의 손실과 손상이라는 물리적 위험이다. 다른 하나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탄소중립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위험이다. 우리의 경제질서는 탄소문명에 기초해 있는데 이미 세계 경제질서는 탄소중립을 향해 탈탄소 전환과정에 있다. EU가 도입을 천명한 탄소국경조정제(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나 미국 등이 시행하겠다는 탄소국경부담금carbon charge 등은 탄소 배출이 높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산업에 직접적인 위험요인이다. 100GWh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사용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전환하겠다는 자발적인 RE100 선언은 그런 기업들에 부품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에게도 지켜야 할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2021년 11월 현재 총 342개 기업이 가입하였는데 국내 기업도 지난해 SK그룹이 최초로 가입한 이후 올해에는 아모레 퍼시픽, 한국수자원공사, 고려아연 등 13개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상태다. 블랙록 등 세계적인 투자사들은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룰 구성하여 투자기업들에 대해 단기적인 재무적 가치가 아니라 비재무적 가치를 중시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요구하며 탄소 배출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해당 기업과 업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더 크게는 세계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경우 철강사 가운데 세계 최초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만약에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구적 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보다 많은 투자를 확보할 가능성을 높이게 되며 전환 실패에 따른 고용 위험을 해소하게 된다.
인류는, 좁게는 대한민국은, 지금 생존의 위험을 마주하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역사적인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까지 아무런 비용 부담 없이 온실가스를 무분별하게 배출해온 결과이다. 그렇기에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이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탄소중립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을 위한 투자이며 그러한 투자가 없을 때 발생할 피해 비용에 견주어 결코 무겁지 않다. 기후위기를 야기한 원인은 우리 인류에게 있다. 개인간 집단간 국가간 책임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공통의 책임 또한 무시될 수 없다. 자연적 변동에 따른 기후체계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가 문제를 야기한 원인이라면 문제 해결의 열쇠 또한 인류가 쥐고 있다. 문제가 되는 사회경제활동의 변화가 요청된다.
이제 더 이상 지구가 보내온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청구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지구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라는 청구서를 이미 제시했지만 이제껏 외면되거나 무시되었다. 이제는 그러한 비용 청구에 답해야만 한다. 문제가 되는 사회경제활동을 줄이고 변화시켜가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답하는 길은 결코 쉽지도 순탄하지도 않을 것이다. 산업과 에너지 관련 인프라를 포함해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탄소 기반 생산과 소비를 모두 바꿔야 하고 지금 우리 삶이 기반하고 있는 탄소문명을 지탱해온 법과 정책, 제도를 바꿔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의식과 삶의 방식 모두 탈탄소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전환의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 기후위기 자체의 위험과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 위험 모두 우리가 풀어야 할 도전적인 과제로 탄소중립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