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 or Learn, Never Lose! : ESG의 여러모습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 우리 곁에 밀접하게 다가온 ESG는 하나의 잣대로 일률적으로 정의하기는 힘든 개념임이 분명하다. 사람, 분야 그리고 나라에 따라 ESG의 개념과 그 깊이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ESG활동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성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오늘은 우리 주위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인식되는 ESG의 모습에 대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런 다면적인 개념과 사례를 통해, ESG를 쌓아가고자 하는 전사적인 노력이 한층 가속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Head: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현재 거세게 불고 있는 ESG 광풍의 배경에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부작용에 대한 강한 반성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대한 넓은 지지가 자리잡고 있다. 2010년대 초반 피케티 교수의 “불평등론”이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준 이래로, 세계2차 대전 이후 75년간 인류는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있었으나, 그로 인한 이면에는 불평등과 비지속성은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자유시장free market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와 주주자본주의는 그 유효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WID World 가 분석한 “세계의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내 소득 상위 1% 하위 50% 계층의 국민소득의 변화추이는 우리 눈을 의심케 하고 있다. 1980년 미국의 상위 1%의 소득비중은 하위 50% 소득의 반에 불과했으나, 35년이 지난 2015년에는 그 상황이 역전되어 상위 1%의 소득비중이 하위 50% 소득의 2배가량으로 급증한 것이다.
한편, 다보스포럼의 회장인 클라우스 슈왑Klaus Schwab박사는 최근 저서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책에서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당국자들은 쿠즈네츠Kuznets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해소되는 관계를 갖는다”는 이론을 맹신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의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쿠즈네츠의 저주kuznets’ Curse 라고 표현한바 있다. 그는 현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그의 이해관계자 모형의 컨셉은 아래 <표2> 와 같다. 즉, 그간 중요시되던 경제적 번영Prosperity을 넘어 여러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와 공익을 감안해야 하며, 그 중심에는 추가적으로 2개의 P, 즉 People 사람)과 Planet (환경)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슈왑 회장이 강력히 주창하고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바로 오늘날 최대의 관심사인 ESG와 직결되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자본/투자시장에서의 용어가 바로 ESG인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사에서 ESG는 주주자본주의와의 결별을 고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각국의 경제정책에서 배태될 경제불평등 완화 및 친환경 경제정책은 바로 ESG의 새로운 모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Heart: 파이 키우기 사고방식]
최근에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책 한권을 소개해 보겠다. 바로 런던비즈니스스쿨의 알렉스 에드먼즈Alex Edmans 교수가 저술한 “Grow the Pie”라는 책인데, 이 책은 최근국내에서 “ESG 파이코노믹스”라는 책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ESG를 기업의 시각으로 봤을 때, 기존의 파이 쪼개기 사고방식Pie-Splitting Mentality이 아닌 파이를 키우는 사고방식Pie-Growing Mentality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어 경영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책이다. 즉, 파이를 키우는 사고방식은 모든 구성원이 같은 목적을 갖고 장기간 함께 일할 때, 파이 조각이 커지는 방식으로 공유된 가치가 창조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파이pie는 “이익”이 아닌 “사회적가치”혹은 “ESG”를 상징하며, 이익은 단지 파이의 일부분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놀랍게도 이 주장은 최근 ESG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니던가!
에드먼즈 교수는 파이코노믹스Pieconomics라는 용어를 활용하여 선 사회적가치 창출을 통해서 이윤도 창출하려는 기업활동에 대한 접근법을 주창하고 있다. 여기서,파이Pie는 기업이 사회를 위해 창출하는 가치를 의미하며, 사회에는 투자자 뿐만 아니라 동료, 고객, 공급자, 환경, 정부, 지역사회라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포함된다고본다. 그리고, 파이코노믹스를 추구하는 것이 (i) 직접적으로 이윤만 추구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며, (ii) 투자자의 파이 조각을 줄이는 것보다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파이를 키우는 것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수반함을 인정하고 있다. 파이를 키우고자 하는 기업
은 첫째,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둘째, 가능한 어느 구성원의 파이조각도 줄어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두번째 목표는 항상 실현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는 바, 이러한 트레이드오프를 조율하는데 있어서, 경영자인 리더의 판단과 기업의 목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기업내부적으로도, 기업경영을 ESG 사고틀로 이해하고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ESG 경영”이 최근 경영학계에서도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에드먼즈 교수가 서술한 내용 중에 의미 있는 한가지를 강조해 보고자 한다. 기존의 파이 쪼개기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면서 우리가 은연중에 써 왔던 중요 어휘들이 파이를 키우는 사고방식에서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래 표를 보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써 왔던 단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잘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을 corporation 보다는 enterprise 로, 기업의 경영진을 Executives 보다는 Leaders 로, 우리 구성원을 Employees 보다는 Colleagues 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단순한 어휘의 정의 및 수정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 또한 ESG로 재무장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는 의미 있는 작은 노력으로 내재화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에드먼즈 교수는 파이 키우기 사고방식 하에서 리더들의 판단에 지침이 될 세가지 원칙도 함께 제시했다. 첫째, 비교우위의 원칙The Principles of Competitive Advantage으로, 기업이 해당 활동을 통해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중요성의 원칙The Principles of Materiality으로, 이해관계자가 사업에 중요한 영향(사업적 중요성)을 미치거나 기업이 염려하는 이해관계자인지 여부(본질적 중요성) 등 특정 이해관계자가 그 기업에 중요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리고 셋째, 곱셈의 원칙The Principle of Multiplication으로, 특정 활동이 기업이 치르는 비용보다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지 (즉, 투자자에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지가 아니라)를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기업들은 첫번째 비교우위는 익히 알고 있지만, 둘째와 특히 셋째 원칙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을 하지 못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 ESG 시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시대에서는 그 이해관계자가 본질적, 사업적으로 중요한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하며, 결정적으로 이윤의 과다 측면이 아니라, 이해관계자에게 귀속되는 가치의 창출여부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SG에 내재화되어 있는 경영마인드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 준 것이라 하겠다.
[Hand: Higg Index]
앞에서는 ESG와 연관된 사고체계Head와 진실성 있는 경영마인드Heart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여기서는 실제 기업의 생산/제조 현장에서 ESG가 구현Hand 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SG 개념 중에 2050 넷제로 목표와 관련, 가장 주목받는 부분이 바로 E(환경) 영역인 바, 여기서는 섬유/의류 업체에서의 ESG가 내재화된 생산평가툴인 Higg 인덱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친환경 의류회사의 대표격인 파타고니아Patagonia는 2009년 월마트와 함께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의류를 만들기 위한 협의체인 SACSustainability Apparel Coalition를 결성하였다. 그 첫 작업으로 의류 생산현장의 환경영향 측정/평가방법을 표준화한 지속가능성 평가툴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Higg 인덱스이다. 라이프사이클 측정Life Cycle Assessment을 바탕으로 의류, 신발, 홈텍스타일 생산의 모든 흐름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수치화하고, 이를 소비자 및 산업계에 전달하고자 하는 글로벌 지속가능성 평가프로그램으로 제시된 것이다. 원료 – 생산 – 브랜드 – 판매 – 사용 – 폐기로 이어지는 모든 생산과정에 대한 환경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환경 친화적인 제품/생산공정을 만드는 것이 동 제도의 목적이다. Higg 인덱스는 2015년 Higg 인덱스 2.0을 거쳐 본격적으로 생산공정에 대한 등록 및 평가를 진행하였으며, 2018년부터 Higg 인덱스 3.0 버전을 운영중에 있다.
아래 표에서 보듯, Higg 인덱스는 밸류체인 내 참여 기업의 자발적인 자체 평가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었으며, Facility, Brand, Product, Retailer 4개 분야의 8개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주력 물품의 생산단계 업스트림 과정에서부터 다운스트림 과정 내 환경영향을 측정하고 있으며, 당해 참여기업과 브랜드의 ESG 측면에서의 강점과 약점을 쉽게 알 수 있게 해 준다. 동 Higg 인덱스는 섬유/의류 업계에서는 친환경성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 바, EU는 역내에 수입되는 섬유/의류제품의 경우 Higg 인덱스가 표기된 제품에 대해서만 판매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통과된 상황이며, 중국 또한 의류제조 공장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평가 후 중앙 시스템에 보고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Higg 인덱스는 ESG를 저해하는 과정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둔 제도로서 ESG/사회적 가치를 플러스(+)로 늘리는 것에는 미흡한 단점이 있으며, 그 표현법도 100점 만점 기준의 점수로 표현되고 있어 아직까지는 완전한 정량적 측정이 되지는 못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제조 단계에서의 환경영향을 실제 측정/평가/관리하고자 하는 발상자체는 다른 업계에서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방안이라 하겠다. 다른 업종에서도 이러한 Higg 인덱스 류의 실제 관리 프로그램이 지속 나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마무리: Win or Learn! Never Lose!]
ESG의 불길은 금방 스러져갈 모닥불은 결코 아닌 듯하다. 경제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명확해지고 있고,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도 파이를 키우는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ESG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각 업종별, 회사별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축적되어 갈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엔 ESG를 하나의 평가지수로 보는 리스크 회피의 시각이 만연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ESG가 추구하는 것이 단순 위험회피를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인류의 체계적인 노력인 것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일들이 승패관계로 이해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현재의 ESG 상황은 지수평가에 따라 한 기업이 누구보다 낫고 못하다고 하는 Win or Lose 관계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가 win 혹은 learn 하면서 전체가 발전하는 Win-Win 상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가는 한 기업의 좋은 사례가 모두에게 배움이 되고, 그 배움이 전체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해서, 새롭게 승화 발전되는 자기구현적 생태계Self-fulfilling ecosystem를 지향해야 한다. 모두가 “루저”가 되지 않고 배움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한국의 ESG 생태계를 꿈꿔본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