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시민형 인재 양성의 앵커(Anchor) 대학,
포스텍

 

1. POSTECH 제9대 총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취임 소감에 대하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슈테른슈툰데(Sternstunde), 별의 순간이 왔다”

개인이나 단체, 국가 모두가 시간이 지나며 변곡점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한국 대학은 세계화와 고등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라 갈림길에 와 있습니다. 한때는 한국 대학을 벤치마킹하던 중국, 싱가폴과 홍콩의 대학들이 이제는 세계대학 평가에서 더 높은 순위를 점하고 있고, 한국 대학은 정체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재정투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은 국가주도 투자로, 미국은 큰 규모의 자산(Endowment)을 이용한 과감한 투자로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는데 비해 한국 대학은 동결된 등록금 수입과 교수들의 연구과제 간접비 등에 근근이 의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자없이 인재를 쥐어짜 성장하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인구감소, 수도권 집중, 의대열풍 등의 현상으로 국내 대학들의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포스텍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전환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만약 글로컬대학 사업 선정과 학교법인의 적극적인 지원이 수반된다면 포스텍에게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가 될 것입니다. ‘슈테른슈툰데’, 즉 포스텍이 재도약할 ‘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총장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2. POSTECH이 그 동안 만들어 온 성과는 기업이 설립한 대학 중 단연 탁월하고, 학계, 산업계, 지역사회 등을 위해 다양한 성과를 만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 동안 POSTECH이 수행해온 대표적인 역할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노벨수상자들도 놀라게 한 기업과 대학의 스토리”

제가 1989년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였는데, 그 해 가을에 언론사 초청으로 노벨수상자 10명이 한국에 방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지도교수이신 하버드대학의 Dudley R. Herschbach(1986년 노벨화학상 수상) 교수께서도 방한하셨는데, 청와대에 초대받아 가셨을 때 참석자 모두가 놀란 얘기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한 제철회사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연구중심 대학을 설립했다는 이야기였는데, 미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런 기업과 대학이 있는 나라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물론 그 주인공은 포스코가 설립한 포스텍입니다. 오늘날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대학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포스코는 이미 거의 40년 전에 그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또한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설립되어 서울대, 카이스트 등 주요 대학들이 굉장히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민간주도의 가속기 설치도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였습니다. 포스코 및 산업기술연구소(RIST)와 함께 구축한 학연산 협업모델은 국가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 창업을 통한 지역 발전에도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포스코와 포스텍이 함께 만들어낸 가치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경탄하는 놀라운 스토리입니다. 포스코와 포스텍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갖고 더 큰 가치 창출을 위해 마음과 뜻을 모았으면 합니다.

 

3. 취임사에서 POSTECH 캠퍼스에 있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좌대를 언급하며, 노벨상이 기리고자 하는 가치는 단순한 학문적 성공이 아니라,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발을 내딛는 “모험가 정신” 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총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모험가 정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Racer가 아닌 Pathfinder”

모험가 정신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는 것과 피부로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다릅니다. 과거 박태준 명예회장님과 같이 모험을 하셨던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모험회피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의사가 되고, 강남 아파트에 사는 것이 최고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모험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마치 동남아에 가서 한국에 감이라는 과일이 있는데, 이것이 어떤 맛과 촉감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느낌이 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명문대생들에게 의대, 법대가 어느 정도 인기가 있습니다만 훨씬 많은 학생들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며 창업에 도전하거나 ‘Teach for America’와 같은 빈민가 교육활동 같은 데 뛰어드는데 아이비리그 학생들도 다수 탈락할 정도로 경쟁률이 높습니다. 왜 이 학생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창업에 도전하거나 위험한 빈민가를 찾아갈까요? 젊은이들이 가진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도전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원동력은 이런 모험가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험가 정신은 젊은이들의 이상과 열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연구에 접목될 때 남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진정한 노벨상 후보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노벨상은 기록을 측정하는 레이싱 경기가 아닙니다. 100미터 경기를 가장 빨리 뛴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육상경기를 만든 사람이 노벨상을 타는 것입니다. 즉 남이 닦아 놓은 길을 열심히 달리는 ‘레이서’가 아니라, 남이 가지 않은 정글에 길을 내는 ‘Pathfinder’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포스텍이 지향해야 할 인재양성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CH 캠퍼스 內 ‘미래의 한국과학자’상

 

4. 급격한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현상 등 지역 대학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POSTECH은 이러한 이슈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글로컬 대학에 예비 지정되었는데요. 앞으로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계시나요?

“글로컬 대학은 기업시민형 대학모델”

대한민국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수도권은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지방은 대도시들마저도 위축되고 있어서 한국은 단핵 국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나라와 같이 작은 나라는 단핵 국가도 괜찮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지형, 문화, 지역 특색 등을 고려하면 단핵 국가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도권은 이미 인재, 돈, 인프라의 블랙홀이기 때문에 이를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하는 중력중심이 필요합니다. 중핵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학이 있어야 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을 보유해야 하는데 포항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유일한 지방도시입니다. 포스텍과 포스코가 함께 중핵 도시로 작동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내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포스텍 입장에서는 ‘환동해 글로컬 연합 아카데미’를 구축하여 지역 대학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많은 지역 대학의 학생들이 포스텍에 와서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체인지업그라운드’ 등 창업 인프라와 경험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세계적 대학이면서도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컬 대학 사업은 기업시민형 대학 지원 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기업시민’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포스코 그룹의 일원인 포스텍이야말로 사업의 취지를 어느 대학보다 잘 구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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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5. 포스코 그룹은 ESG 이슈가 급부상하기 전인 2018년에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선언하여 사업포트폴리오(Business)부터 사회공헌(Society), 조직문화(People) 측면의 변화로 최근 기업가치가 3배 이상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대학의 QS평가에서도 ESG측면의 Sustainability가 중요한 요소로 다뤄지고 있는데, POSTECH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기업시민형 인재양성의 앵커(Anchor) 대학”

ESG경영에 대한 바람이 거셉니다. UN에서도 Sustainability를 반기문 前사무총장님이 계실 때부터 강조해왔고,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당장의 생존이 중요해지다 보니 다소 후순위에 놓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Sustainability는 더욱 추구해야 합니다. 환자가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때를 놓치면 수술을 해야 하듯이 Sustainability는 때를 놓치면 회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 지구가 바로 이런 상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포스텍은 그 동안 기후, 환경 관련 기술개발로도 기여해 왔지만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선두에 나설 것입니다.

이미 2019년에는 기업시민연구소를 신설하였고, 인문사회학부에 ‘기업시민경영과 ESG’ 과목을 Pilot으로 운영하는 등 대학의 ESG 측면에서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포스텍의 기업시민 과목 운영 경험을 전국 거점국립대와 인근 대학 등에 확산하는 등 기업시민형 인재 양성의 앵커(Anchor) 대학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QS 대학 평가에도 ESG 측면의 활동이 5% 수준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ESG 관련 분야 교원과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선도적인 지위를 더욱 강화할 계획입니다.

2023-1학기 기업시민 레벨업 그라운드 (포스텍 기업시민연구소-포스코그룹 주최)

 

6. 기업시민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오피니언 리더들께 추가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한국사회에 매버릭(Maverick) 유전자 회복을 기대하며”

많은 분들이 36년만의 속편으로 개봉한 ‘탑건, 매버릭’을 보셨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의 콜사인이기도 한 매버릭(Maverick)은 ‘길들여지지 않은 젊은 소’라는 뜻으로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인데 위 영화 주인공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포스텍은 설립 시부터 이런 매버릭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특성이 다소 약화된 이 시점에 다시 우리 포스텍 구성원들의 매버릭 유전자가 활성화되었으면 하며, 이러한 물결이 타 대학과 한국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