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시대 기업의 윤리경영
ESG는 What, 윤리경영은 How

 

 

[ESG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의 열쇠]

인류 문명은 유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발전 중에 있다. 동시에 기후 위기와 극단적인 자연재해, 자원 고갈과 식량 부족, 생물 다양성 파괴, 차별과 인권 침해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기회와 위협이 병존하는 불안정한 생태계에서 우리 인류는 과연 지속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가 찾은 해답 중 하나가 ESG다. 인류의 발전과 생태계 위협의 원인이 상당 부분 기업으로부터 기인하기에, 기업이 인류의 지속가능성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SG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철학과 방법론은 무수하다. 대표적으로 정부나 국제적 규제를 통한 의무화의 방식으로 ESG를 실현하자는 철학과 기업의 자율적 재량에 맡기자는 철학이 대립하고 있다. 또한 ESG는 단기적 트랜드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과, 명칭은 바뀔 수 있지만 중장기적 트랜드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대립 중이다. 한편 ESG는 자본시장이 주도하고 있기에 기업의 ESG 추진 동기를 자본주의적 계산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해관계자들의 중요성과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자본주의적 계산은 ESG의 다양한 동기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ESG는 What, 윤리경영은 How]

ESG에 대한 다양한 철학과 주장의 홍수 속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주제는 “ESG 시대에 기업의 윤리경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ESG 시대를 맞이하면서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많이 관찰되는 유형은 윤리경영을 ESG의 실천 아이템 중 하나로 그 역할 범위를 축소하는 유형이다. G(지배구조)의 세부 항목 중 하나로 “윤리경영”을 다루는 K-ESG가 대표적이다. K-ESG는 우리 정부 주도의 ESG 가이드라인으로, 국내 공공, 민간 기업의 ESG 경영 실무에 중요한 지침 역할을 하고 있다. K-ESG의 G 영역 내에서, “윤리 규범 위반 사항 공시” 여부를 통해 윤리경영을 평가하게 되는데, 주로 통상적인 반부패 행위(예, 이해관계 상충 행위, 금품 및 향응 수수, 직무권한 및 지위 남용 등)들을 예시하고 있다. 또 다른 유형은 윤리경영을 ESG와 별개로 보는 유형이다. ESG는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행위들(예, 투자/자금 조달이나 판매/수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들)을 다루고, 윤리경영은 사업적 연관성보다는 임직원들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규범 행위를 다루는 것으로 구분하는 유형이다.

기업윤리를 전공한 필자의 눈에는 두 유형 모두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며, ESG와 윤리경영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ESG를 실천하는 방식을 “윤리적인 방식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로 윤리경영의 역할이다. 우리 기업들은 윤리경영을 매우 협소한 범위의 what(예, 임직원들의 윤리 규범 준수 행위)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윤리경영은 what 자체보다는 what을 실천하는 방식의 옳고 그름, 즉 “how” 또는 “way of doing”에 관한 것이다. 기업이 중요시 여기는 what은 시대, 국가, 또는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윤리경영은 what이 무엇이 되었건 그 실천 방식을 올바르게 윤리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ESG는 what이고 윤리경영은 how이다. 쉽게 말해서, ESG의 수많은 액션 아이템(what)을 윤리적으로 올바르게(how) 실천하도록 만드는 경영 행위가 바로 윤리경영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보다 더 오랜 윤리경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 기업들은 윤리경영의 핵심을 진정성(integrity)으로 이해하고 있다.

 

[ESG와 윤리경영에 대한 관점의 전환]

ESG를 what으로 윤리경영을 how로 이해하는 관점은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ESG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성 있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행 ESG 경영 모델은 E, S, G의 3대 영역에 걸쳐 구체적인 실천 항목(action items)들을 설정하여 그 이행도를 관리하는 모델이다. 개별 실천 항목을 이행하는 주관 부서와 KPI가 정의되고, ESG의 전반적인 이행도와 주요 이슈들은 전사 컨트롤타워 격인 ESG 전담 조직에 의해 관리되며, 정기적인 보고 과정을 통해 최고경영진, 이사회(ESG 위원회)에 의해 주요 의사결정이 내려진다. 이러한 ESG 경영 모델은 기본적으로 ESG의 이행 수준에 주목하기 때문에 대개 양적 관리가 주를 이룬다. 온실가스 배출량, 재생에너지의 비중, 폐기물의 양, 신규 채용 일자리 수, 장애인 고용률, 산업재해율(중대재해법 적용 포함),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과 여성 이사의 비율 등 대부분 양적인 지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더 많은 지표를 더 높게 달성할수록 ESG 경영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600여 개에 달하는 ESG 평가 기관들 대부분도 이러한 양적 평가(정량적, 정성적 평가 방식을 혼용함)에 기초하고 있는데, 양적 관리 중심의 ESG 경영의 흐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단지 ESG 성과 “숫자”를 맞추는 데 열중하며, 각 항목의 실천 과정에서 윤리성, 진정성 이슈들이 발생하더라도 현행 ESG 모델에서는 잘 관리되지 못한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ESG 경영 자문 시 ‘진정성’ 논리가 ‘사업성’ 논리를 좀처럼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진정성이 결여된 ESG 경영은 결국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포착되며, 무서운 평판 비용의 청구서로 되돌아온다. 그린 워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ESG는 내부 직원들의 블라인드 폭로, 소비자 단체나 시민단체의 고발, 미디어의 폭로 등으로 번져간다. 따라서 ESG는 이행률(what) 못지않게 이행 방식(how)도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윤리경영을 통해 ESG 이행 방식의 윤리성과 진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둘째, ESG를 추진함에 있어서 유관 조직 간의 업(業)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 많은 기업이 ESG 전담 조직과 윤리경영 전담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는데, 조직 간의 업무나 역할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경우가 많고, 중복되거나 상충하기도 하며, 종종 R&R 떠밀기로 중대한 업무 공백이 발생하기도 한다. ESG를 what으로 윤리경영을 how로 이해하는 관점을 적용해 보면, ESG 전담 조직은 ESG 이행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되, 윤리경영 전담 조직은 ESG 이행 방식을 제 3자 관점에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물론 ESG 전담 조직 내에 이행 방식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도 있지만, 자기 조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윤리경영 전담 조직의 역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리경영 전담 조직은 임직원들의 전반적인 법규 준수, 윤리 규범 준수 행동을 관리함과 동시에, ESG 활동 방식에 대한 윤리성, 진정성 여부를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ESG 활동이 지나치게 사업성 위주의 기준으로 이행되고 있지 않은지, 양적 목표 달성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은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ESG 활동의 이면에 은밀하게 작동하는 이해 상충, 불공정거래, 권한 남용, 권리 침해, 정보의 무단 활용 등의 비윤리적 행위가 없었는지 면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가 진심으로 수긍하고 인정할 수 있는 ESG 경영이 가능해진다.

[맺음말]

요약하면, ESG 시대를 맞이하여 기업들은 대응 전략 수립과 이행에 고심하고 있는데, 윤리경영은 ESG 활동 중 하나의 항목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윤리경영은 ESG활동이 얼마나 윤리적이고 진정성 있게 이행되는지 그 ‘방식’을 관리하는 중요한 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윤리경영은 ESG라는 함선이 제대로 된 속도와 방향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타’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