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윤리경영의 실천

[알지만 쉽지 않은 실천, 윤리경영]

‘윤리경영’이란 윤리를 기업 활동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모든 업무 활동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행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기업의 경영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이익 추구라는 기업의 본질을 고려할 때 그 실천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사건은 윤리경영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존슨앤존슨은 1982년의 타이레놀 사건 대처 후 윤리경영의 모범 케이스로 회자되었고 1999년과 2000년 연속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하는 ‘미국의 선망받는 기업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시카고에서 타이레놀 제품을 복용한 6명이 연쇄적으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인 규명 전에는 타이레놀 제품을 복용하지 말라’고 홍보하며 ‘시카고지역’ 제품을 수거하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권고를 뛰어넘어 전국에서 제품을 전량 회수하면서 오히려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다.
2009년과 2010년, 존슨앤존슨은 박테리아 오염 우려 등 이유로 또다시 타이레놀 리콜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때의 양상은 20년 전과는 다소 달랐다. 존슨앤존슨이 오래전부터 오염된 제품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FDA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야 리콜을 실시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존슨앤존손은 강력한 윤리문화 조성을 위한 헬스케어 컴플라이언스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모든 직원에게 시나리오 기반 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기적인 ‘Credo Survey’와 ‘Voice Survey’를 통해 윤리적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도 꾸준히 모니터링한다. 하지만 투자자·고객으로부터 예전의 평판을 다시 얻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뼈아픈 경험을 통해 구축된 지멘스의 윤리경영]

지멘스는 최악의 부패 스캔들을 기록한 기업에서 세계 최고의 윤리경영 실천 기업으로 탈바꿈한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였다. 2006년 11월, 독일 검찰이 뮌헨 지멘스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전·현직 간부를 체포한 사건이 일어났다. 곧바로 이어진 횡령, 뇌물 수수, 자금세탁, 탈세 등 조사에서 2001~2004년 러시아,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지에서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멘스는 내부 통제의 고의적 회피, 실패에 대한 형사적 책임 및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독일과 미국 정부에 약 20억 유로(한화 가치 약 2조 6,400억)의 벌금과 합의금 납부를 합의하였다.
이후 지멘스는 2007~2008년 뮌헨 검찰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미 법무부 등의 사법 조사에 대응해 강도 높은 준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멘스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내부 준법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예산을 한도 없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1조 2천억 정도를 컨설팅 등 외부 비용으로 쓸 정도로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작업에 공을 기울였다고 한다. 또한 세계 각국의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독일 본사로 집중하여 재구성하고 준법감시인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과거의 부패 스캔들을 직원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그 밖에도 윤리경영을 뿌리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그 과정에서 중점을 둔 두 가지 방향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로부터의 실천, 즉 고위 간부와 중간 간부들의 실천에 주력하였다. 지멘스 는 사업 행동 지침 Business Conduct Guidelines에 관리자가 가지는 특별한 책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관리자로서 책임을 지고 직원을 보호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을 포함하여 네 가지의 구체적인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개인적·업무적 자질 및 적합성을 바탕으로 직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선택의 의무’, 법적 요구 사항의 준수와 관련한 업무를 정확하고 완벽하게 정의해야 하는 ‘지시의 의무’, 법적 요구 사항의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감독해야 하는 ‘감독의 의무’, 책임감 있는 업무 수행의 중요성, 법적 요구사항의 준수, 부정행위의 결과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전달의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직원 윤리교육에 대한 책임도 윤리 담당 부서가 아닌 현업 관리자가 가진다. 교육자료는 컴플라이언스 부서가 제공하지만, 경영층이 내용을 스스로 소화하여 고위 간부에게 전달하고, 고위 간부는 다시 산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윤리교육을 실시한다. ‘청렴 대담 Integrity dialogue’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교육방식은 간부 입장에서는 내용을 충분히 숙지해야 하므로 직원 입장에서는 업무를 잘 아는 관리자와 현실적인 이슈를 논의하기 때문에 교육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두 번째, 비즈니스 필드에서 직원들이 스스로 윤리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갖추고 있다. 지멘스는 윤리경영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초기 1년 정도는 컴플라이언스 관련 KPI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독려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오히려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깨달아 곧 KPI 평가 방식을 폐지하였고, 직원들에게 임파워먼트를 부여하면서 윤리 위반 행위가 발생하면 더 강하게 징계하는 기조로 변경하였다. 대신 사업별, 지역(국가)별 윤리 리스크가 프로파일링 된 방대한 체크리스트를 관리하며 프로젝트 수행에서 완료까지 각 마일스톤(수주-구매-시공-완성 등) 마다 시스템을 통해 제시되는 체크리스트를 현업에서 자율 점검하게 하고 있다. 점검 결과는 윤리 총괄 부서로 자동 보고되고, 윤리 부서는 이를 바탕으로 진행 사항을 점검하고 현업의 실행을 지원하게 된다. 각 단계마다 필요한 의사결정 기준이 규정화되어 있어서 이에 기반하여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지멘스에서는 찾지 못하는 규정은 있어도 없는 규정은 없다’고 스스로 얘기할 정도로 다양한 사안에 대한 기준들이 상세히 마련되어 있다.

 

[윤리경영이 가야할 길]

윤리경영은 법규 준수 및 직원들의 윤리적 의사결정을 중점에 둔 개념이지만, 국가·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기업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ESG경영, 지속가능경영 등 유사 개념과 윤리경영과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을 선정하는 ‘에티스피어Ethisphere’의 평가 항목도 반부패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과 역할을 함께 다룬다. 지멘스 역시 전통적인 반부패 분야를 넘어 인권과 환경에 대한 책임까지 윤리경영 분야를 확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례는 윤리경영의 실천 범위를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을 것이다. 윤리경영의 활동 분야뿐만 아니라 활동 방식에 대해서도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어지간한 기업들은 윤리경영 시스템을 어느 정도 마련하고 있다. 외부 평가기관에서 요구하는 기본 항목이 있다 보니 그에 맞춰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제대로 실행하고 있느냐이다. 조직과 규범, 예방·모니터링·제재 등 실천 체계를 갖추는 것을 넘어 내부 직원과 외부 이해관계와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와 개선을 모색함으로써 윤리가 조직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