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이터를 통해서 본 기업의 사회적 지향과 역할

 

 

 

역사에서 본능은 언제나 제도에 앞서 있었다. 인간 정신활동의 기원을 신체에서 찾으려고 했던 프로이트(S. Freud)는 본능을 정신과 신체 사이의 경계 개념으로 보았다. 생물학에서 본능은 유전적 인자에서 기인한 종(種) 특유의 행동기제라 보지만, 프로이트는 어디에서 야기되었든 정신적으로 강제된 충동 혹은 자극으로 본능을 설명한다. 즉, 다양한 욕구에서 비롯되는 흥분상태가 열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본능이고, 외부로 표현되고 실현되면 욕구를 둘러싼 긴장은 감소한다.
제도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본능을 기반으로, 그 본능을 제어하거나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기 다른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저마다의 본능은 내용과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제도는 각자의 본능을 조정하고, 때로는 추동하면서 갈등은 줄이고 효율은 높이려 기능한다. 오랜 시간 속에 반복된 경험의 축적이 제도의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의 필요를 조정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제도와 함께 본능을 제어하며 안정적인 사회 운영에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가치이다.
일상생활에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재화나 상품과 같은 경제적 가치가 대표적이지만, 정신적 가치, 즉 무엇을 욕구나 관심의 대상으로 설정하는지 또한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가치의 한 요소이다. 본능과 제도, 그리고 가치는 밀접한 연관 속에 구성되고 발현된다.
원초적 본능을 제어하기 위해 제도가 형성되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제도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태생적 본능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제도와 가치는 공진화하며 본능과의 상호작용 속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기업과 ‘사회적’인 가치

제도로서의 기업은 효과적인 자원 배치와 업무 분담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영리를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타났다.
다양한 요인에 의해 기업은 진화해왔다. 새로운 업종이 생겨나고 조직 형태나 업무의 내용도 변화를 거듭했다. 존재의 이유라 할 수 있는 영리추구는 여전히 당연하지만,
이와 함께 새로운 가치의 이입과 확산은 기업의 기본적 지향에 영향을 미치며 과거와는 다른 기업의 역할과 정체성을 주문하고 있다. ‘사회적social’으로 통칭되는 가치와 지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 계기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 속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보다 직접적 계기는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유엔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제적 제재조치로 인해 장기간 피해를 보고 있는 민간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석유-식량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과 유엔의 일부 직원이 공모, 결탁하여 결과적으로 사담 후세인의 막대한 비자금을 축적하게 되는 비리로 연결되었다. 이로 인해 유엔은 개혁과 투명성 제고의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되었고, 당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다양한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유엔 차원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니셔티브가 마련되었는데, 기업들과 협력하여 보다 나은 기업, 보다 좋은 사회, 보다 공평한 세계를 만드는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체계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1999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유엔글로벌콤팩트의 창설을 제안하고, 이듬해인 2000년에 뉴욕에서 발족시켰다. 최초로 회의가 개최된 2000년에 유엔글로벌콤팩트는 불과 47개의 기업 및 단체가 참여했으나, 현재는 전 세계 160개국에 걸쳐 9,500여 기업 회원의 참여가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기타 경제단체나 노동단체, 학계, 지방자치단체, NGO 등의 참여도 이어져 약 13,600개 회원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사회책임 이행 조직이 되었다.
유엔글로벌콤팩트는 4대 부문, 10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의 4대 부문에 대해 유엔의 핵심 규약이라 할 수 있는 ‘세계인권선언’, ‘ILO 근로자 기본권선언’,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 ‘유엔반부패협약’ 등에 기초한 10대 원칙을 설정하였다. 참여 기업은 10대 원칙을 자사의 경영정책 및 활동에 통합시키고, 이행 결과를 보고서의 형태로 작성하여 주주는 물론 소비자, 협력사, 종업원, 지자체, 정부 등 회사 관련 이해관계자들에게 공개하고 유엔에 해당 내용을 등재함으로써 투
명성을 담보한다.
우리의 경우, 1990년대 말 IMF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심화된 사회문제들이 기업의 사회적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즉, 날로 심각해지는 실업, 양극화, 주거, 환경오염 같은 문제들에 대한 사회 총체적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과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단기적 이윤에 집착하기 보다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자각이 나타났다. 기업이 속한 지역과 주민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기업이 추구하는 근본 지향 속에 사회적인 가치와 지향이 체계적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기업의 설립목적을 아예 사회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기업’부터 기업 활동 속에서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가치, 기업 시민 등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관심이 언제부터, 어떤 맥락에서 비롯되었고 또 어떤 추이를 보여왔는지 지난 30년간의 언론 보도 기사를 통해 분석해 보았다.

 

뉴스데이터에 나타난 기업 가치의 지형

분석에 활용한 데이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bigkinds.or.kr)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하였다. 1990년부터 생산된 총 5,683만건의 기사를 모집단으로 하여 기업 관련 보도가 이루어진 기사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먼저 기업을 주 키워드로 하여, 사회적 관심과 역할에 대해 보도된 기사의 추이를 살펴보았다. ‘기업’과 함께 ‘상생’, ‘공생’, ‘사회적 가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 ‘기업 시민’ 등의 키워드가 나타난 기사가 시기별로 얼마나 생산되었는지 분석하였다. 공적 담론의 장에서 나타난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는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사회적 요구의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가 있다. 그래프를 통해 파악된 내용을 보면, 1990년 이후 꾸준하게 기업의 새로운 가치추구와 지향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나타났을 시점에는 관련 기사의 숫자가 증가하지 않거나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났다. 90년대 말 IMF 경제위기의 시점이나 2006년 글로벌 경제위기, 2014년의 세월호 참사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대통령 탄핵 및 조기 대선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위기의 시점에서는 다른 때와 구분되는 양상이 드러났다.
이러한 추이는 전체 기업관련 기사 중 기업의 사회적 관심과 역할에 대한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측정한 결과에 있어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전체 기업관련 기사 중 25% 내외의 비중을 보였던 기업과 사회적 역할 및 관심에 대한 기사가 IMF 경제위기가 시작된 시점부터 2002년까지는 20% 정도로 줄어든 양상이 나타났다. 2003년부터 꾸준히 비중의 증가가 나타나 2015년의 경우에는 35%까지 그 비중이 증가했지만, 이후 다시 감소하는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인 양상과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주로 보도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10년을 주기로 하여 해당 기사들에 대한 연관어 분석을 실시하였다. 세 시기 중 첫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기간 중에는 ‘경쟁력’과 ‘구조조정’이 가장 많이 언급된 연관어였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 함께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언급한 보도가 많이 나타났고,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경영자, 근로자)간의 협력적 활동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관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였다. 지속적인 어려움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일자리’문제와 함께 ‘지속가능’이나 ‘CSR’, ‘윤리경영’이 많이 나타났고, 상생의 주요 관계자 및 대상이라 할 수 있는 ‘협력사’, ‘협력업체’, ‘취약계층’에 대한 언급도 이전 시기와는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 시기까지는 기업이 다소간 우월적 위치에서 여타의 이해관계자들을 주도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2010년 이후에는 이해관계자들과의 위치가 보다 수평적으로 조정되고 보다 장기적인 안목과 지향 속에 상생의 가치 구현을 도모하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즉, ‘동반성장’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연관어로 등장했고, ‘CSV’와 함께 ‘생태계’, ‘더불어’, ‘공동체’등의 연관어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기업의 변화된 가치지향 속에 공존과 공생의 원리가 본격화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세 시기 모두에서 ‘경쟁력’이라는 연관어는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본원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리추구의 핵심이 차별적인 경쟁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 본연의 목적이 변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지향과 가치가 더해진 양상이라 해석이 가능하다.

 

지속가능한 공생을 위하여

산업화 이후 해체된 공동체 속에서 뒤르켐E. Durkheim은 새로운 윤리의 근거를 직업집단에서 찾은 바 있다. 생득적인 속성은 달리하지만, 같은 직종에 종사하며 사회적 연대의 대상이 되는 집단 내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의 재정립과 이에 필요한 윤리와 규범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업이 변화된 지향과 활동을 통해 사회와 공생의 가치를 체득하며, 무한경쟁으로 대표되는 효율 제일의 사회가 맞이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노력들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특히 포스코는 기업시민의 의미와 역할을 정립하며 지속가능한 공생의 사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위자로서 기업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의 다른 기업들과 차별적 특성을 갖는다.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업 운영을 우선적 가치로 설정하고, 부가적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던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이에 비해 포스코는 시민적 자질과 소양을 갖춘 기업시민이 제반 기업 활동에 행위자로 역할한다는 면에서 기본 전제를 달리한다.
즉, 시민적 덕성과 자질을 갖춘 제도로서의 기업이 영리추구를 비롯한 제반 기업활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분석된 기사 데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사회와의 공생과 상생의 필요 주체로서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외부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며 나타난 단기적이고 일시적 활동이 아니라 체화된 가치에 기반하여 장기지속적, 반복적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추구하고 있는 기본적 지향 및 제반 행위에 대한 신뢰의 축적이 가능하다. 신뢰 축적은 사회와 기업의 협력적 활동을 위한 필수 요소다. 사회 구성원들과 협력적 활동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동반성장은 물론 공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 변화가 아직은 다소 모호하고 생경하기에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시민적 자질과 역량을 기본적 본능의 한 자리에 앉히는 것, 지난하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작업이라 할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