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지 시민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포스코건설 송필용 과장

대구 노원2동 재개발사업현장 인근에서 자전거 타다 쓰러진 노인에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대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쓰러진 한 노인을 응급조치로 살려낸 한 시민이 뒤늦게 알려졌다.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은 포스코건설 대구 노원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현장의 안전담당자 송필용 과장이다.

▲10월 18일 대구 북구 노원2가동 일원에서 인근현장 안전담당자 송필용 과장이 지나가다 쓰러진 60대 남성에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다.

10월 18일 오전 11시 45분 북구 노원2가동 일원에서 자전거를 타던 60대 남성 이모씨가 갑자기 심정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인근식당에서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나오던 송필용 과장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지체없이 쓰러진 어르신께 뛰어갔다. 이어 어르신이 의식이 없자 동료 직원에 119를 불러줄 것을 요청한 후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에 들어갔다.

4분가량 심폐소생술을 홀로 진행한 송필용 과장은 이후 도착한 119구급대에 어르신을 인계했다. 송과장의 재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해당 어르신을 이송 중 의식을 되찾았으며, 뇌 손상 없이 인근 병원에서 회복 후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필용 과장은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로 일하며 CPR 등 관련 교육을 수시로 받아왔는데, 익혀둔 심폐소생술 덕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송필용 과장님 안녕하세요. 과장님의 빠른 대처 덕에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당황하지 않으시고 정확한 대처를 하실 수 있으셨나요?

현장에서 안전 업무를 담당하며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날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 같습니다. 어르신이 건강을 회복하셨다고 하니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부친께서 심혈 질환을 앓다가 작고하셨습니다.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60대 정도의 남성분이 쓰러지는 걸 보니 직감적으로 심혈 질환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뛰어가 응급처치를 한 것 같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 호흡이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자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안전관리자는 안전의 궁극적인 목표인 ‘인간존중’을 위해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계획, 지도조언, 관리자와 근로자에 대한 교육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안전관리자로서 제가 맡은 가장 큰 임무는 현장의 근로자와 현장 밖의 시민 등 모든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여 생명을 지키고 안전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작은 사고부터 예방하게 되면 큰 사고도 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작은 것부터 챙겨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현장만큼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한발 더 뛰고 한 번 더 점검하여 절대 중대재해가 나지 않도록 하자’ 하는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그렇게 일하면 다른 안전관리자들도 본인의 현장을 그렇게 챙길 것이고 그러면 곧 우리회사 전체적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근무하는 현장은 철거현장으로서 현장 바깥에 먼지나 낙하물, 구조물전도 등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서 펜스 밖의 안전까지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장 인근 상가와의 유대관계가 중요합니다. 하여 주변 상가에 도울 일이 있다면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함께하고 있으며, 주변을 통행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현장외곽 환경미화도 진행중입니다.

▲송필용 과장이 현장 직원을 대상으로 심장제세동기(AED)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최근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 대한 애도 물결 속에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구한 시민들이 화제를 모으면서 심폐소생술 교육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모든 현장 안전, 보건, 시공 담당자를 대상으로 매년 심폐소생술과 심장제세동기(AED) 사용을 교육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포스코그룹 통합 소통채널 ‘포스코투데이’를 토대로 제작했습니다.

목각에 새겨 넣은 기업시민헌장, 실천을 통해 만들어 가는 또 다른 작품들

안녕하세요. 포항제철소 선재부 장진국입니다. 저는 1991년 1월 포스코에 입사해 현재 선재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무에 좋은 글귀를 새기는 ‘서각’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요. 제 취미인 서각과 기업시민헌장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포스코 기업시민헌장’에 관한 특별한 경험과 추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설명부탁드립니다.

▲2021 기업시민 포스코 컬처데이에 전시한 기업시민헌장 서각 작품

 

지난 해 11월 30일에 열린 기업시민 포스코 컬처데이에 1년 6개월에 걸쳐 직접 새겨 만든 ‘포스코 기업시민헌장’ 현판이 전시됐습니다. 제 작품이 전시되던 날 정말 기뻤습니다. 기업시민 컬처데이 행사는 기업시민 경영이념 실천 성과를 정리하고 방향을 공유하는 자리였는데요. 원래 출품을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직원들이 기업시민헌장을 늘 마음에 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제작해 1선재공장 입구에 걸었던 작품이었는데요.

▲기업시민 포스코 컬처데이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관람 중인 최정우 회장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

 

주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수령 60년 된 수양버들 나무를 활용하여 목재건조만 1년, 조각에는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 소중한 작품을 더 많은 분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뿌듯합니다.

 

서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1991년 입사 후 체력을 길러 현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보디빌딩을 시작했습니다. 10년간 보디빌딩을 하면서 시·도 대회에서 활동하며 상도 많이 받았는데요. 2005년 전국 대회 2위 입상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종목 특성상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새롭게 접한 취미가 바로 ‘서각’입니다. 활동적인 취미를 즐기다가 차분하게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는 서각을 하려니 처음에는 낯설었는데요. 신중하게 나무를 고르고, 나무에 새길 좋은 글귀를 찾는 일에서 점차 삶의 충만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또, 작품을 완성하면 큰 성취감을 느끼며 긍정적인 마인드도 기를 수 있었고요. 특히 정성껏 완성한 서각 작품을 존경하는 선배, 동료들에게 선물할 때 정말 뿌듯합니다. 마음을 담은 작품을 받고 기뻐하는 지인들을 보면 저도 덩달아 흐뭇해집니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한 저만의 작은 기업시민 실천이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기업시민헌장’ 선포 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통합운전실에서 후배들과 함께

먼저 기업시민헌장 선포 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기업시민 포스코의 일원으로 매우 뜻 깊고 영광스럽습니다. 2019년 7월 25일 기업시민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했습니다. 기업시민헌장을 작은 정성으로 한 자 한 자 나무에 새길 때 가슴에 들어왔던 557자의 의미를 기억합니다.

“사회발전을 위해 시민처럼 자발적으로 공존, 공생의 역할을 다한다.”

기업시민 포스코의 작은 밀알이 되어 배려와 나눔을 기반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하겠다는 작은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스려봅니다. 조금은 서툴고 부족할지 모르지만 작은 밀알의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각자 고유의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 포스코”는 영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도 묵묵히 근무지에서 땀 흘리고 있을 수많은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더운 날 건승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기업시민헌장 선포 3주년을 축하드리며 기업시민헌장의 내용을 되새겨봅니다.

 

최근에는 어떻게 기업시민을 실천하고 계신가요?

▲2022년 현재, 최정우 회장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기업시민헌장 서각 작품

 

기업시민헌장 작품 이후, 어떻게 하면 더욱 기업시민을 잘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스스로도 기업시민의 길을 잃지 않고 또 동료들과 함께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에 도달하고자 포항 가안2리, 자매마을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한 가안2리 봉사활동

 

또한 지금 맡은 업무를 조금 더 완벽히 해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료의 안전을 염려하는 초심을 지키며 설비 점검, 관리에 최선을 다해 사고 없는 안전한 현장을 만들겠습니다. 더 나아가 포스코 기업시민헌장이 말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 기업시민 가치를 창출하는데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헌장 선포식 참석 후 3년, 해외에서 실천해가고 있는 기업시민

‘Aku Cinta Kamu(아쿠 친타 카무)’. 인도네시아어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지난 2019년 인도네시아 현지와 우리나라 언론에서 사내 포상금을 지역 단체에 기부한 크라카타우포스코 직원의 사례가 화제가 됐었다. 크라카타우포스코는 2010년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기업 크라카타우스틸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인도네시아 철강 산업의 주역으로 땀방울을 흘리며 ‘글로벌’ 기업시민을 실천하고 있는 크라카타우포스코의 무클리스(Muklis) 기술팀 리더를 만나봤다.

▲ 2019년, 인도네시아 현지와 우리나라 언론에서 ‘기업시민 포스코대상’을 수상해 받은 포상금을 지역 단체에 기부한 크라카타우포스코 무클리스(Muklis) 기술팀 리더의 사례가 보도됐다.

(*19년 당시, 주니어 리더였던 그는 2022년 7월 18일부로 제선부 코크스 기술팀 리더로 보임되었다.)

 

2019년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한지도 3주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선포식에도 직접 참석하셨는데요.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2019년 7월 25일, 포스코 기업시민 헌장 선포식 날은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영광스럽고 뜻 깊은 기억이었습니다. 포스코 해외법인 대표로 초청받아 최정우 회장님과 나란히 입장하여 선포식을 위한 버튼을 누르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 순간 저는 포스코 뿐만 아니라 앞으로 크라카타우포스코에서도 기업시민 활동이 확산되어 찔레곤을 넘어 인도네시아와  더불어 함께 발전할 우리 회사의 더 큰 미래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크라카타우포스코는 기업시민헌장에 가치를 실행하기 위해 김광무법인장 이하 모든 직원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력사를 포함한 전 직원의 안전한고 쾌적한 작업장 구축을 위해 안전시설물 개선은 물론 열악한 시설을 체계적으로 개선 중에 있으며,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우수한 인재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목적으로 교육센터 설립, 초등학교 환경 개선 등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와 공공시설 봉사 등을 하며 나눔 활동의 의미를 지속 되새기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9년 6월에 소수의 한국 주재원들로 시작한 “Ayo Semangat”(화이팅합시다) 봉사단은  우리의 자랑거리이자 직원들이 나눔 활동에 참여하는 모델 활동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본 봉사단체에서 소통국장을 맡으며 직원들의 참여독려와 지역사회와 소통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층의 적극적인 지원과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현재는 인도네시아 직원들도 120여명정도 참여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회원이 늘고 있습니다.”

▲ ‘2022 글로벌 모범시민 위크’에서 Dream Kids 봉사활동 중인 크라카타우포스코와 무클리스 리더

”기업시민헌장 선포 후, 지난 3년간 Dream Project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중에 열악한 초등 학교 시설을 개선한 Dream School(2020), 안전하고 깨끗한 제철소 도로 구축을 위한 Dream Road(2021), 또한 금번 글로벌 모범시민 위크에 첫 시작을 한, 고아원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환경개선과 교육 지원의 Dream Kids(2022) 봉사활동을 지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 뿐만 아니라, 크라카타우포스코의 찔레곤 천만톤 클러스터의 실현이야 말로, 인도네시아에서 비즈니스파트너, 지역사회, 직원들의 위한 최고의 기업시민 활동이라는 신념으로 전 직원들과 함께 2기 투자를 위해 노력해 나가며 기업시민활동도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2022년 7월

무클리스 기술팀 리더는 훌륭한 공장장이 되기 위해 조업기술에 대한 역량을 키울 뿐만 아니라, 직원들과의 소통해 그 조직만의 고유 문화를 만들어가야 된다는 것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과거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으로 하나가 됐던 포스코인들처럼 무클리스 기술팀 리더 역시 인도네시아의 산업의 근간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까지 챙길 수 있는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의 무클리스 기술팀 리더의 따뜻한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건내는 가슴 따뜻한 무클리스 기술팀 리더의 꿈과 열정을 응원합니다.

“Terima kasih! (트리마 카시/감사합니다)”

 

출처 포스코 뉴스룸 ‘‘아쿠친타카무’, 크라카타우포스코 무클리스 주니어 리더가 사는 법’

 

봉사시간 1만 시간의 가족봉사단

시력을 잃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주청소년을 위해 헌신한 교육자

포스코청암재단은 지난 4월 6일 서울 대치동에 소재한 포스코센터에서 ‘2022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이 날 수상자 들은 자신이 걸어 온 삶의 역정과 인간 승리의 스토리를 통해 시상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특히 교육상 수상자 유해근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은 시력을 잃는 악조건 속에서도 중도입국 이주 청소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감동스토리로 큰 울림을 주었다. 지난 30 여년간 교육자로,그리고 우리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 운동가로 살아 온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사장님. 2022 포스코청암상 교육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포스코청암상 교육상 수상소감을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과거 30년 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우면서 함께 살아왔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일은 몽골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작은 학교를 만든 것이에요. 상을 받고자 해온 일은 아니었어요.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죠. 그렇게 20 여년 이상 세월이 흐르다 보니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과연 제가 청암교육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을 바라고 한일은 아니었으나 항상 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남은 저의 삶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이 땅의 수많은 외국인 이주민들, 특별히 재한몽골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선생님들, 나섬 공동체 여러분들을 섬기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재한몽골학교를 시작하신 계기를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1999년도에 처음 몽골학교를 시작했어요. IMF가 터지자 우리나라에 와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도 생활이 어려워져 그들을 위한 무료급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외국인 노동자들 틈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더군요.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으나 한국어를 전혀 몰라 한국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몽골 아이들이었죠. 부모는 일터에 나가 집에 아무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못해 끼니를 때우기 어려웠던 아이들이 급식소까지 찾아 왔던 거에요.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습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곳곳을 돌면서 때로는 지하방에서, 때로는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자원봉사자 분들과 인권단체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재한몽골학교로 성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1999년, 8명으로 시작한 재한몽골학교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을 텐데 유독 몽골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대부분 혼자 한국에 입국합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면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죠. 그런데 유일하게 몽골 노동자들만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들어와요. 왜냐하면 몽골 사람들은 원래 유목민족이지 않습니까. 유목민족의 특성은 가족단위로 함께 움직이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몽골 초원에 가면 게르와 게르 사이가 약 5Km에서 멀게는 50Km가 떨어져 있어요. 그런 환경에서는 이웃과 함께 산다는 개념보다는 가족단위로 살아간다는 인식이 강하죠. 그런 민족 특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일하러 오면서도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들어오게 되었고, 또 그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진 것을 제가 보게 된 거죠.

이러한 민족 특성이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몽골인 수가 약 10만명으로 몽골 전체 인구의 3% 수준이나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학교를 시작한 ‘99년도 당시에는 국내 몽골인 수가 3만명 이었고 이들 자녀들이 한국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어 부모가 일을 하는 낮 시간 동안 방치되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 몽골 아이들을 모아서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군요. 재한몽골학교는 정규 외국인학교로 인가도 받았죠?

학교를 세운 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학력 인정 문제였습니다. 초창기에는 몽골에 돌아가도 학력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아이들의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몽골 교육부로부터 학교 인가를 받아야 했는데, 몽골 교육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먼저 인가를 해주면 자기들도 따라서 인가를 내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서울시 교육청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당시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위법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 재한몽골학교의 인가를 계속 거부 했었어요. ‘국내 외국인 중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자 신분인데 이 학교에 인가를 내주면 불법체류를 인정해주는 모순이 생긴다’는 논리였지요. 논쟁 끝에 ‘모든 아동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들고 설득을 시작했고 그제서야 분위기가 바뀌더니 약 2년 동안 공식 절차를 밟아 한국과 몽골에서 학력을 인정받는 정식 학교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몽골의 현직 교사 16명을 학교 비자로 초청해 학생들에게 몽골 교육부 지침에 맞는 몽골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요. 또 10여 명의 한국인 강사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도 가르치고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학교라고 하면 대체로 선진국형 외국인학교를 말합니다. 영미계를 중심으로 독일, 프랑스, 일본, 그리고 일부 화교학교가 있지 않습니까? 국내의 많은 외국인학교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자국에서 세운 학교지만 재한몽골학교는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세운 특별한 외국인학교인 거죠.

 

2005년 외국인학교 인가 기념식

 

학교 설립 인가 과정에서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시력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웃음)
‘만약에 제가 눈이 보였다면’ 이라는 가정을 종종 하곤 합니다만, 만약에 눈이 보였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제 눈이 보였다면 재한몽골학교를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눈이 보였다면 어쩌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게 시력이 없다는 것이 이제는 은총으로 느껴집니다. 한때는 저에게 매우 큰 고통이었고 절망이었는데 지금은 제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졸업생들을 많이 배출하셨는데, 몽골과 한국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겠네요.

현재 재한몽골학교는 초∙중∙고등학교 전 학년에 걸쳐 300여 명의 재학생들이 있어요.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지난해까지 540여 명에 이르고요. 졸업생들이 몽골 현지에서 훌륭한 인재로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정말 뿌듯함을 느낍니다. 현지 경찰기관, KOICA(한국국제협력단) 몽골사무소, 주몽골 한국대사관, 몽골 정부기관, 금융기관 등 몽골 사회 곳곳에 우리 재한몽골학교 졸업생들이 활약하고 있어요. 지금은 작은 학교지만 이 아이들이 10년, 20년쯤 지나면 몽골의 지도자들이 될 거에요. 이 학생들이 앞으로 한국과 몽골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돕고 있지만, 나중엔 결실을 맺어 이 아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17회 재한몽골학교 졸업식

 

몽골인들은 우리와 외모는 많이 비슷하지만 문화적으로 다른 측면도 많을 텐데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몽골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어떤 것이 있나요?

몽골 사람들은 유목민 특유의 호방함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와 비슷한 순수하고 따뜻한 정의 정서도 함께 가지고 있어요. 일단 기본적으로 몽골은 제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죠. 13세기에 칭기스칸이 세웠던 제국이 바로 몽골제국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스케일이 커요. 우리보다도 대인적인 풍모가 있다고 할까요? 그리고 대륙적인 기질도 좀 있고요. 그런 부분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유목민적 기질입니다. 요즘은 노마드에 대한 이야기, 디지털 노마드니, 문화 노마드니, 유목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그 유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철학적이고 인류 문화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장점들을 몽골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워요.

한편 우리나라가 정이 많은 민족이면서도 단일 민족국가라고 하면서 외국인에게 굉장히 폐쇄적인 부분이 있어요. 또 우리 몽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고, 그러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면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나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시대,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열린 마음으로 우리 재한몽골학교 아이들을 안아주고 끌어안고 간다면 미래 우리 사회에 크나큰 긍정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 아이들이 몽골의 정체성과 한국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이 아이들이 몽골의 동량으로 성장한다면 두 나라의 든든한 가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재한몽골학교 초창기 학생들

 

다문화시대에 우리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우리사회는 저출산에 초고령화로 인구 절벽의 시대를 맞이한다고 흔히들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 와 있는 우리 아이들로 바라봐야 합니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재들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에게 그들은 더 이상 ‘짐’이 아니고 ‘힘’인 거죠. 미래의 우리 사회를 함께 이끌고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결국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가 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거든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때 그 사람들이 결국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떤 힘이 되어 주는 거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전형적인 다문화 가정 출신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는 몽골 영웅 칭기스칸의 노마드 철학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우리도  ‘내 것’ ‘우리 것’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하면서 함께 나누고 공유하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몽골학생 외에 타 아시아국가 출신 학생들을 위한 학교 건립도 추진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라는 새로운 학교도 운영을 해오고 있어요. 몽골에서 온 학생들 외에 여러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를 찾아 온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학교입니다. 저의 꿈과 소망은 이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학교가 미래에 이주배경 자녀들을 위한 정말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초창기 유해근 이사장과 아이들(2011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50만 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 인구의 5%가 넘는 많은 이주민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죠. 저는 30년 동안 그들의 땀과 눈물을 보며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차별과 편견이 많은 지도 봐 왔습니다. 특히 재한몽골학교 아이들이 당해야 했던 차별과 무시는 저의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 새로운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결국 그렇게 살아야만 우리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더 이상 소외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